울주군 두서면 '알곡한우농장' 전경.
 

4계절 내내 우렁찬 소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울주군 한우농가. 이곳의 소들은 다른 지역 소들과는 조금 다르다. 잘생긴 외모부터 우월한 체격까지 '명품'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울주 한우'. 전국 각지에서 명품 소를 찾기 위해 울산으로 찾아온다.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고 떠나는 우직한 소의 인생. 그리고 그들과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다. 다큐 '울산1.5일' 세 번째 이야기는 울주 한우농가다.(편집자주)

전국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명품 한우마을' 울주군. 울산 전체 한우 농가 1,521곳 중 1,435곳이 군 소속이며 총 3만5,522두가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중 두서면에서 160두의 소와 함께 지내고 있는 '알곡한우농장' 대표 김태호(47) 씨는 지난해 제25회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최연소 '대통령상'의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로써 울산에서 3번째 대통령상이 나온 것.
 

울주군 두서면 '알곡한우농장'에 갓태어난 수송아지 한마리가 어미 젖을 먹고 있는 모습.
 

#새 생명의 탄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김태호 대표의 농장에서 오랜만에 새 생명이 탄생했다. 38.5도였던 어미소의 몸속에서 양수물을 덮은 채 영하의 기온으로 나온 수송아지 한 마리. 미리 깔아 둔 톱밥 위에서 송아지는 처음 느끼는 차디찬 바람에 온몸을 떤다. 어미소에 비하면 아주 작고 귀여운 덩치. 태어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태어나자마자 일어 설 준비를 한다.

김 씨는 일어나는 법을 터득하려면 "몇 번 넘어지고 일어나야한다"며 넘어진 송아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빠른 회복을 위해 따뜻한 바람으로 온몸을 말려준 후 송아지계의 '명품 패딩'이라 불린다는 전용 옷을 입혔다.

사람의 손을 거치면 송아지의 회복 시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어미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 모성애가 강한 어미소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다. 어떤 곳에 있더라도 냄새, 모습 등으로 자신의 새끼를 한 번에 찾는다. 어미소의 최대 임신 가능 횟수는 보통 10산. 1년에 1~2번은 농장에서 쌍둥이가 탄생한다.

"어미소의 첫 초유를 잘 먹는 것이 송아지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김 대표.

송아지가 어미젖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 준다. '쪽쪽쪽' 젖을 찾아 먹으면 들려오는 소리. 이것으로 새 생명이 건강하게 잘 클 것이라 확신한다.
 

이른 새벽, 김태호 대표가 이준철씨와 함께 우시장에 보낼 이웃농장 송아지를 싣고있다.
 

#새벽을 여는 시간 3시

소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농장주들의 기상시간은 새벽 3시~4시. 특히 다른 농가의 소를 받아서 운송해 줘야 한다면 더욱 빨리 움직여야 한다.

"시골에서는 남들이랑 똑같이 해서는 못 살아요. 1시간~2시간 덜 자고 더 많이 움직여야지"라고 말하던 김태호 대표는 이미 한우 운송 10년 차 베테랑이다.

소들이 잠들어있는 늦은 새벽. 주문받은 농장을 찾아가 장날에 내보낼 송아지를 차에 싣는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김 대표의 파트너는 이웃 농장주 이준철(36) 씨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잔뜩 겁에 질린 소들. 자신이 팔릴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발버둥친다.

울주 한우농장을 운영 중인 B씨는 "처음에는 아쉽고 섭섭하고 그랬지만 그거 다 생각하면 농장 운영 못한다"며 송아지들과의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울산축협 가축시장에 온 송아지들.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품 소' 경매

오전 7시가 넘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울산축협 가축시장. 다른 가축을 제외한 한우만 판매하기에 다들 '우시장'이라 부른다. 매달 2일, 7일마다 열리는 한우 5일장. 끝자리가 2인 날에는 큰 소 장, 7인 날에는 송아지 장으로 운영된다. 이날은 송아지 장이 열린 날. 전국 각지에서 개량이 잘 되는 고품종 울산 한우를 탐내는 우주들이 송아지를 구매하기 위해 진즉 자리를 잡는다.

소를 대신 사고팔아주는 중개업자부터 자신의 소를 판매하러 온 우주들까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시장에 들어선다. 실려오는 송아지들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걸 예감한 건지 온몸에 힘을 주고 움직이지 않는 송아지부터 빠르게 날뛰며 도망 다니는 송아지까지. 총 306개의 자리 중 270개 자리가 채워질 만큼 꽤 많은 송아지들이 모였다.

분주하게 트럭에서 소를 내리는 이경훈(48) 씨.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봉계 농장에서 수놈 3마리, 암놈 2마리를 싣고 왔다. "18년째 농장을 운영 중이지만 우시장 결과는 늘 예측할 수 없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미리 받은 입찰 번호에 맞게 소를 제자리에 걸어둔 사람들은 가축시장 내 식당으로 향한다. 경매 전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곳은 장이 열리는 날에만 운영을 한다. 식당에는 대구, 밀양, 영천에서 달려온 농장주들도 있었다. "울산 소가 좋아서 여기만 옵니다"라며 웃는 한 밀양 농장주는 경매에 정신 팔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 사이 경메장에서는 가격 사정인이 최저가를 적어두고 수의사가 수송아지의 잠복고환을 확인한다. 잠복고환이 돼버리면 거세를 할 수 없어 고급육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검사다.
 

순서대로 들어오는 송아지를 보며 입찰실 안에서 경매를 하고있는 사람들.
 

송아지도 사람도 준비를 마치면 9시 정각에 경매가 시작된다. 이때 우시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낙찰 소리에 누군가는 탄식하고 누군가는 기뻐한다.

입찰실에서 송아지를 살펴보던 부산축협 박정우 주임은 "울산 소만큼 개량이 잘 되어있는 곳이 없다"며 "올 때마다 항상 사고 싶은 소가 많아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에서 운영하는 생축장에 넣을 소를 구매하러 왔다.

이날 송아지 평균가는 250만 원. 그중 최고가를 자랑한 수송아지는 452만 원으로 낙찰됐다.

울산 축협 홍성국(45) 주임은 "유찰된 소가 없을 때 가장 만족스럽다. 소에 대한 애착으로 하는 일이다. 여기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며 일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낙찰된 송아지는 경매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나게 된다. 이날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유찰된 소는 총 6두.

사람들에게 우시장은 소를 사고파는 공간이지만 송아지들에게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오는 송아지와 기존에 농장을 지키던 소는 가까워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 하루도 채 되지 않는다. 서로를 살피더니 금새 얼굴을 비비며 인사를 한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농장주는 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한 미소를 보인다.

"30개월 동안 밥 줘서 키운 소가 나갈 때보단 30개월 키워야 하는 송아지가 들어올 때 더 기분이 좋다"는 정종태(44) 맑음농장 대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직 배우는 단계지만 전부 내 자식 같다"고 말하며 소에 대한 애착심을 보였다.
 

지난 해,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태호 대표가 자신이 키우는 소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소를 먹이기 위해 소를 키우다

"이게 개값이지 송아지값이가"

소를 키워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옛말. 지금은 소를 먹이기 위해 소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2009년부터 소를 키우다가 손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한 농장주가 "사료값은 계속 올라가지만 소 값은 떨어져 키우는 의미가 사라졌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 달 뒤에 송아지를 팔기 위해 시세를 보러 왔다던 두서면 한우 농장주(78)도 "먹이 줄 돈도 안될 만큼 싸다"며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경매를 지켜봤다.

김태호 대표도 같은 상황. "사료값, 건초값, 볏짚값 등 소 키우는데 필요한 것들 중 안 비싼 게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는 빚으로 시작해 지금껏 15년 넘게 최선을 다해 농장을 운영했다. "가족과의 여행을 포기하고 잠을 줄여가며 농장 운영에 한우 운송까지 하는 중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15년 째 한우를 키우며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한 알곡한우농장 김태호 대표.
 

그럼에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울주 한우 농가를 지키고 있는 소들과 농장주들. 그들은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함께하는 동안 같이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다. 오늘도 울주 한우농가는 소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로 하루를 보낸다.

이번 영상은 울산매일 UTV 채널(youtube.com/iusm009)과 QR 코드, 홈페이지(www.iusm.co.kr), 인스타그램(@ulsan_maeil) 등에서 만날 수 있다.

김지은ㆍ최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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