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항 1

죽변 오일장이다 담장 호박꽃이 환하게 시들어가는 한낮 무럭무럭 늙고 있는 할매 셋이서 장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찐빵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다 김숙남 할매는 열셋에, 최진구 할매는 열넷에, 주필석 할매는 열둘에 한입 덜려 시집왔단다 하나같이 뽀얗고 팽팽할 때 신랑 먼저 보낸 늙은이 그동안 누가 호명이나 하여 주었던가 자식 같은 남정네일망정 이름 불러주니 늙어서 웬 호강인가 북면 고목 삼리에 산다는 왕 할매한테 술을 권한다 여태껏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인데 사내가 주니 받아먹네 갈 때가 되어서야 팔자 고치네 팔자 고쳐 질투하는 할매 손잡고 더러 할배 생각나지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마른 눈물 훔치며 수박씨 뱉듯 툭툭 내뱉는 말 개코나 생각나길 뭘 나 청상과부로 늙게 한 게 괘씸하지 워떡해 살라고 먼저 가 가길 사진틀 속 남편보고 보기는 뭘 봐 생전에는 눈길에 그렇게 인색하더니 쎄빠지게 고생한 거 알기나 해여 애는 왜 배 놓고 가느냐, 고 고함을 쳐대어도 그냥 백치같이 웃기만 한다고 너스레 떠는
할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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