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에서는 주목할 만한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한때 말레이시아 정치의 총아였지만, 동성애자로 몰려 투옥당했던 안와르 아브라힘이 총리직에 올랐다. 한국에서라면 김대중 후보가 34기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며 정권교체를 이룬 것에 견줄 수 있다. 일본이라면 사민당이 부활해 자민당 정권을 갈아치운 것에 비교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통일말레이국민전선(UMNO)이라는 정당이 1957년 독립 이후 집권해서 일본의 자민당처럼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해왔다. 심지어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정치적 분위기도 일본과 비슷해서 보수정치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 정점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마하티르 총리.

말레이시아 정치권의 이단아로 불리는 안와르도 처음에는 마하티르 총리의 총애를 받았다. 1980년대 마하티르의 발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자리에까지 오르면서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로 알려져 있다. 당시 마하티르 총리는 IMF식 처방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통해 금융위기를 벗어났다.

이 때 안와르는 마하티르식의 금융위기 처방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와르는 정치적 후견인인 마하티르와 달리 IMF 방식의 엄격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와르는 금융위기를 기회로 말레이시아의 기득권 세력을 개혁하려 했다. 기득권의 정점에 있던 마하티르는 안와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기고 분노했고, 숙청에 나섰다.

안와르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고, 집권당에서도 쫓겨났다. 마하티르는 개혁의 상징이 되어버린 안와르를 모질고 치졸하게 탄압했다. 마하티르는 안와르를 동성애와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했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이슬람 사회에서 동성애는 사회적 매장과 다름없다. 쿠란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가르친다. 말레이시아에서 동성애자는 3년의 징역형과 벌금, 태형을 받는다.

안와르의 동성애 혐의는 첫 번째는 무죄로, 두 번째는 유죄로 판결 났다. 안와르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안와르는 동성애자로 낙인찍히고서도 이슬람 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살아남았다. 말레이시아인들이 안와르의 동성애 혐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안와르의 동성애 혐의를 정치적 모함이라고 생각했다.

개혁을 열망하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믿음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안와르는 2018년 총선에서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당시 동성애 혐의로 옥중에 있던 안와르는 자신이 이끄는 정당의 돌풍을 기반으로 정적인 마하티르와 손을 잡고 최초의 정권교체를 달성한다. 우여곡절 끝에 마하티르와 다시 결별했지만, 결국은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직에 올랐다.

말레이시아 기득권 세력은 안와르를 동성애자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했지만, 안와르의 정치생명을 끊을 수 없었다. 설사 말레이시아 기득권 세력이 안와르를 합법적으로 살해했더라도, 안와르의 정치적 생명은 온전했을 것이다. 안와르의 부활은 정치인이 대중의 믿음 속에 살고, 믿음이 허물어질 때 죽는다는 교훈을 전한다. 그렇다. 정치인은 감옥에 갇혔다고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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