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미국 대선 통해 본 행복과 민주주의
  • 현대일보
  • 승인 2023.01.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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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이 소멸했기 때문에 각주를 대표하는 세 후보 즉, 테네시의 잭슨(Andrew Jackson), 켄터키의 크레이(Henry Clay), 매서추세츠의 존 퀸스 애덤스(John Q. Adams)가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해 의회에서, 크레이가 애덤스를 지지해 애덤스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존 퀸스 애덤스는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아들이다. 애덤스 집권시부터 반연방당의 결속(Republican consensus)은 깨지고 그 대신 지역 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민주당(Democrat)과 휘그당(Whig는 1858년 공화당이 됨)이 되었다. 

1828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애덤스와 잭슨이 대결했다. 민주당으로 출마한 잭슨은 테네시의 농부 출신이며 영미전쟁의 영웅으로 “제2의 워싱턴”으로 불렸다. 잭슨은 보통 사람의 친구 (friend of the common man)로도 불렸다. 잭슨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테네시주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박식하지 못했고 철자법(spelling)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연설은 주로 대필 (ghost-written speeches)에 의존했다. 

잭슨은 친근함과 서민적인 이미지로 1828년 대선에서 애덤스에 압승했다. 잭슨은 대통령(7대, 1829-1837) 시절 중요정책 결정에 있어서 내각에 의존하기  보다, 부엌 내각(Kitchen Cabinet)으로 불리는 소수의 보좌관에 의존했다. 부엌 내각으로 불린 보좌관 그룹(inner circle)의 핵심 인물은 언론인 출신의 켄달(Amos Kendall)과 블레어(Francis Blair)였다. 켄달은 잭슨의 “생각하는 기계, 글쓰는 기계, 거짓말하는 기계 (thinking machine, writing machine & lying machine)”로 불렸다. 

1830년대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잭슨은 미국의 정치 역사상 처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고 영미전쟁의 영웅이기도 했다. 잭슨은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했고, 정부도 보통 사람들 (common folk)에 의해 다스려질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모든 백인 남자 (흑인과 여자는 제외)가 투표권을 갖게 됨으로써, 어느 면에서 보통 사람의 시대 (age of the common man)를 맞게 되었다. 흑인의 투표권은 1870년 수정헌법 15조에 의해 부여되었고,  여성의 투표권은 1920년 수정헌법 19조에 의해 부여되었다.  

프랑스의 형법학자인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1930년대 초(1831-32) 미국 사회를 돌아보고 미국과 같은 평등조건(equality of condition)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사람들 사이의 평등의식(equalitarian spirit)은 아주 특이하다고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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