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EPA=연합뉴스]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EPA=연합뉴스]

선진국들 가운데 화석연료 감축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이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2월 24일)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맞서 유럽에 대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을 대폭 줄이면서 가격이 치솟자 종래의 계획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연합뉴스는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 독일이 주요 7개국(G7)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합의했던 화석연료 감축 계획을 수정하자는 제안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은 오는 26∼28일 자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준비한 제안서 초안에 "현재 에너지 위기에 일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G7 국가들이 가스 부문에 대한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자"라는 내용을 담았다.  

독일은 제안서에서 이런 투자가 기후변화 대처에 나선 G7 국가의 목표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수행될 것이며, 다른 신규투자를 방해하는 잠금효과(lock-in effect)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석탄화력발전소[블룸버그 캡처]
독일의 석탄화력발전소[블룸버그 캡처]

독일이 제안서 초안을 통해 철회 내지 번복을 거론한 부분은 지난 5월 G7 기후·환경·에너지 장관들이 베를린에서 발표한 공동성명 내용의 일부다.

당시 G7 장관들은 2035년까지 전력 부문에서 탄소배출을 대체로 종료하고, 2025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을 아예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올해 연말까지 화석연료 관련 사업에 공공 부문이 직접 투자하는 것을 종료하자는 내용도 합의 사항에 포함돼 있는데, 독일의 제안서 초안에는 가스 부문에 대한 공공 투자를 예외로 두는 방안이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이 초안을 두고 독일과 다른 G7 국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만큼 정상회담 전 내용이 변경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심화하는 에너지 수급 대란 속에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일방적으로 줄이는 등 무기화할 움직임까지 보이자 유럽 각국은 기존 에너지 체제 유지도 어려운데 신재생 에너지 전환으로 나아가는 게 쉽지 않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이 검토 중인 제안서 초안 내용이 그대로 발표된다면 첨예한 논쟁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공동 대처라는 대의를 깨고 상황 논리에 따라 이미 국가간 합의된 내용을 철회하자는 주장인데다, 에너지 조달 구조가 서로 다른 G7 국가들끼리도 이해관계가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연합뉴스는 풀이했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석탄 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고육지책까지 내놓는 등 대책 마련에 총력을 쏟고 있다. 독일은 최악의 경우 가스 배급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독일 서부 겔젠키르헨에 있는 석탄발전소와 풍력발전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독일 서부 겔젠키르헨에 있는 석탄발전소와 풍력발전기[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영국은 일시적으로나마 가스 분야 공공투자를 줄이지 말자는 독일의 제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안에 밝은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영국은 독일의 초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처럼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이탈리아는 에너지 수입 경로 다변화를 통해 해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독일의 제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독일 니데라우셈에 있는 석탄발전소 냉각탑[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독일 니데라우셈에 있는 석탄발전소 냉각탑[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작년 40%에서 현재 25%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기후연구 싱크탱크인 E3G의 앨던 마이어 수석연구원은 "(만약 초안대로의 제안이 있다면) 우리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끝내기 위해 일본까지 겨우 끌어들여 이뤄낸 진전을 크게 퇴보시키는 셈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