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있는 식품의약국(FDA) 제64동 청사. 이 건물에는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와 의료기기·방사선보건센터(CDRH)가 입주해 있다. [사진=FDA 제공][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직장암 환자에게 암을 제거하는 수술은 생명을 구하는 치료이지만, 이후 환자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다. 배변 기능이 떨어지거나 평생 장루를 사용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치료 과정에서 시행한 수술·항암화학요법·방사선치료 등으로 인해 배뇨장애와 성기능 저하, 불임 등의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특정 유전자 특성을 가진 직장암 환자에게 면역항암제만 투여한 결과, 10명 중 7명 이상이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추가 항암화학요법을 받지 않고 질병 진행 없이 경과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현지시간 19일 GSK의 면역항암제 '젬퍼리(Jemperli, 성분명 도스타를리맙·dostarlimab)'를 특정 국소진행성 직장암 환자의 치료제로 가속 승인했다.
이번 승인으로 미국에서 해당 유전자 특성이 확인된 환자는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에 앞서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승인 대상은 이전에 치료받은 적이 없는 2기 또는 3기 국소진행성 직장암 성인 환자 가운데 불일치복구결함(dMMR) 또는 고빈도 현미부수체불안정(MSI-H)이 확인된 경우다.
이러한 유전자 특성을 가진 암세포는 DNA 복제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정상적으로 복구하지 못한다. 그 결과 암세포 내부에 유전자 변이가 축적되고 면역체계가 인식하는 비정상 단백질도 늘어나 면역항암제에 높은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젬퍼리'는 면역세포 표면의 PD-1 단백질을 차단하는 단클론항체다.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용하는 억제 신호를 차단해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FDA는 국소진행성 직장암 환자의 약 3%가 이번 승인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GSK는 전체 직장암 환자 가운데 dMMR 또는 MSI-H 유형의 비율을 약 5~10%로 제시하고 있다. 두 수치는 추정 대상과 근거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154명 중 110명, 추가 치료 없이 질병 진행 없어
이번 허가의 핵심 근거는 다국가·다기관에서 진행한 공개라벨 단일군 2상 임상시험 'AZUR-1'이다.
연구에는 조직검사로 직장암을 확진받은 2기 또는 3기 dMMR/MSI-H 환자 15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전에 직장암 치료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젬퍼리' 500mg을 3주 간격으로 최대 9차례 정맥 투여했다. 전체 치료 기간은 약 6개월이었다.
종양 반응은 치료 6주와 12주 시점, 마지막 투여 약 3주 후에 내시경과 직장 자기공명영상(MRI), 흉부·복부·골반 컴퓨터단층촬영(CT)을 이용해 평가했다.
그 결과 전체 154명 중 110명(71.4%)이 '젬퍼리' 단독 투여 이후 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고, 자료 분석 시점까지 질병 진행도 확인되지 않았다.
나머지 환자 가운데 26명(17%)은 수술을 받았다. 이들 중 일부는 추가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도 병행했다.
13명(8%)은 수술 없이 추가적인 전신 항암치료 또는 방사선치료를 받았으며, 1명은 질병이 진행됐지만 추가 치료를 받지 않았다. 나머지 4명은 임상시험에서 중도 탈락하거나 추적관찰이 중단됐다.
이 결과는 직장암 환자에게 적용해 온 치료 순서 자체를 재검토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수술 전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로 종양 크기를 줄인 뒤 직장을 절제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됐다. 반면 이번 임상시험에서는 면역항암제를 먼저 투여하고 암이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평가된 환자에게 수술 대신 정기적인 검사를 시행했다.
환자가 수술을 피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치료 전 종양의 크기나 위치에서 치료 후 실제 반응으로 확대된 셈이다.
완전관해율 47%와 68%…평가 주체 따라 차이
이번 임상시험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완전관해율이다. FDA가 주요 평가변수로 채택한 것은 면역항암제 치료 후 임상적 완전관해가 12개월 동안 유지되는 비율이었다.
임상적 완전관해는 내시경과 영상검사 등에서 암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 절제 조직을 검사해 암세포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병리학적 완전관해와는 다르다.
독립 중앙평가위원회가 판정할 수 있었던 환자 116명 가운데 54명(47%)이 12개월 지속 임상적 완전관해에 도달했다. 반면 연구진이 직접 평가한 환자 144명 가운데서는 98명(68%)이 같은 기준을 충족했다. 두 평가 사이에는 21%포인트의 차이가 있었다.
독립평가와 연구진 평가의 대상 환자 수가 각각 116명과 144명으로 달랐고, 치료 반응을 판정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발생했다. 특히 독립평가 대상자 가운데 38명은 이미 임상적 완전관해에 도달했지만, 자료 분석 시점에는 12개월 추적관찰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이들은 향후 추적관찰 결과에 따라 지속 완전관해 평가에 추가될 수 있는 환자들이다.
독립평가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소실된 상태인 근접 완전관해(near-complete response)에 도달한 환자도 44명이었다. 독립평가 기준 전체 객관적 반응률은 79%, 연구진 평가는 82%였다.
중앙 추적관찰 기간은 26.3개월이었다. FDA는 "이 기간에 12개월 지속 완전관해, 임상적 완전관해 또는 근접 완전관해에 도달한 환자 가운데 질병 진행이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암이 남은 줄 알고 수술했는데…15명 중 12명은 암세포 없어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결과는 영상검사와 실제 수술 조직검사 사이의 차이다. '젬퍼리'만 투여받은 뒤 영상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수술받은 환자 15명 가운데 12명은 절제 조직에서 살아 있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전체의 80%에 해당하는 수치로, 영상검사에서는 종양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면역항암제 치료로 암세포가 모두 제거된 상태였던 것이다.
GSK는 이러한 병리학적 완전관해 환자 12명을 연구진 평가에서 12개월 임상적 완전관해를 유지한 98명과 합산했다. 그 결과 평가 가능한 환자 144명 가운데 110명(76%)에서 치료 후 1년 이상 암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탐색적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여기서 76%는 수술 없이 완전관해를 유지한 환자와 수술 후 병리검사로 완전관해가 확인된 환자를 합산한 수치다. 전체 154명 중 110명(71%)이 추가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결과와는 분모와 평가 기준이 서로 다르다. 이 차이는 직장암에서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영상검사만으로 치료 후 남아 있는 조직이 살아 있는 암세포인지, 암세포가 사라진 뒤 형성된 섬유화 조직이나 치료 반응의 흔적인지를 완벽하게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역항암제 치료 후 종양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자 가운데 실제 수술이 필요한 대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가려내느냐가 향후 치료 전략의 핵심 과제로 남는다.
앞선 50명 연구에서는 12개월 완전관해율 93%
FDA는 AZUR-1 외에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등이 진행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 결과도 검토했다.
이 연구에는 이전에 치료받은 적이 없는 dMMR/MSI-H 국소진행성 직장암 환자 50명이 참여했다. 환자들은 '젬퍼리' 500mg을 3주 간격으로 최대 9차례 투여받았다. 그 결과 객관적 반응률은 100%였으며, 12개월 지속 임상적 완전관해율은 93%에 달했다.
이 연구에서 환자들은 국소진행성 직장암 치료를 위한 항암화학방사선요법이나 직장암 절제수술을 받지 않았다. 3년 이상 추적관찰한 환자 27명 가운데 국소 재발이 확인된 환자는 1명이었다. 이 환자는 림프절 절제술을 받았다. 나머지 추적관찰 환자 가운데 1명은 연구에서 중도 탈락했고, 1명은 연구 대상 질환과 무관한 원인으로 사망했다.
이 연구의 12개월 완전관해율 93%는 AZUR-1의 독립평가 결과인 47%보다 높았다. 두 연구는 환자 규모와 평가체계, 추적관찰 시점이 달라 수치만으로 치료 효과를 비교할 수는 없다.
FDA는 두 연구를 함께 검토해 특정 직장암 환자에서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의 임상적 이익을 판단했다.
수술 대신 선택한 정기검사…첫 2년은 4개월마다 확인
면역항암제만으로 종양이 사라졌다고 해서 환자 관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AZUR-1 임상은 치료 후 임상적 완전관해에 도달한 환자에게 비수술적 관리(non-operative management)를 적용했다.
연구진은 첫 2년 동안 4개월 간격으로 내시경과 영상검사 등을 시행해 종양이 다시 나타나는지 확인했다. 이후에는 검사 간격을 6개월로 늘렸다. 추적관찰 과정에서 종양이 다시 발견되거나 질병이 진행된 환자는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등 기존 표준치료를 검토하도록 했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직장을 보존하면서 재발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직장암 수술은 종양 위치에 따라 항문 보존 여부가 달라지고, 일부 환자는 영구적인 장루를 사용해야 한다. 수술을 피하면 이러한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정기검사를 통한 장기적인 감시가 치료 과정의 일부가 된다.
중대한 이상반응 20%…면역계 부작용 관리 필요
'젬퍼리' 단독요법의 안전성도 함께 평가됐다. 임상시험에서 중대한 이상반응은 환자의 20%에서 발생했다. 가장 흔한 이상반응은 피로(32%), 발진(22%), 설사(18%), 가려움증(17%)이었다. 이상반응으로 치료를 영구 중단한 환자는 3%였다.
PD-1 억제제는 면역체계의 항암 작용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정상 장기와 조직에도 염증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FDA는 면역매개성 폐렴과 대장염, 간염, 내분비질환, 신장염, 피부 이상반응 등을 경고하고 있다. 일부 면역매개성 이상반응은 중증으로 진행하거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수술과 항암화학방사선요법을 피하는 치료 전략에서도 면역항암제 자체의 안전성 관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FDA 가속 승인…장기 재발률 검증 계속
이번 허가는 FDA의 가속 승인 제도를 통해 이뤄졌다. 가속 승인은 중증질환 치료제 가운데 임상적 이익을 예측할 수 있는 평가변수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확인된 경우, 추가 검증에 앞서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다.
FDA는 이번에 12개월 지속 임상적 완전관해를 주요 근거로 채택했다.
GSK는 앞으로 환자들의 치료 반응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장기 재발률과 임상적 이익이 어떤 수준인지를 추가 추적관찰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이번 임상시험은 비교군 없이 모든 환자에게 '젬퍼리'를 투여한 단일군 연구다. 따라서 기존 수술·항암화학방사선요법과 직접 비교한 전체생존기간이나 무병생존기간의 우월성 자료는 확보되지 않았다.
FDA 역시 "장기적인 재발 위험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FDA 종양학우수센터(Oncology Center of Excellence)의 안젤로 데 클라로(Angelo de Claro) 국장은 "직장암의 기존 표준치료는 환자의 삶을 크게 바꿔 놓는다"며 "이번 승인은 특정 유형의 직장암 환자가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요법을 피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FDA는 새로운 치료 접근법을 환자에게 신속히 제공하면서도, 장기적인 임상적 이익을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DA는 이번 허가를 당초 심사 목표일보다 약 4개월 앞당겨 결정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 영국, 스위스, 이스라엘 규제기관이 항암제 심사를 협력하는 '프로젝트 오르비스(Project Orbis)'를 활용했다. 미국 외 참여국의 허가 심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이번 승인으로 미국에서는 dMMR/MSI-H 국소진행성 직장암 환자에게 허가된 첫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이 등장했다. 앞으로는 진단 단계에서 해당 유전자 특성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치료 반응을 평가해 수술 여부를 결정하며, 수술을 생략한 환자를 장기간 추적관찰하는 진료체계가 치료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