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SK케미칼이 차세대 면역항암제로 급부상 중인 'HPK1(조혈 전구체 키나아제 1)' 억제제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신규 화합물을 확보하면서, 신약 명가로의 재도약을 위한 전략적 행보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31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SK케미칼은 HPK1 단백질의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신규 화학구조의 소분자 화합물을 발굴하고, 이와 관련한 약학 조성물과 치료 용도 등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특허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HPK1은 인간 MAP4K1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로, 주로 T세포, B세포, 수지상세포 등 조혈계 면역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세린/트레오닌 키나제(Serine/Threonine Kinase) 효소다.
면역세포 내부에서 T세포 수용체(TCR) 및 B세포 수용체(BCR) 신호 전달의 강력한 음성 피드백 조절자로 작용하며,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세포 내 면역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 암세포나 항원 자극이 발생하면 HPK1이 활성화돼 하위 어댑터 단백질인 SLP76의 세린 376 잔기를 인산화하고, 이에 따라 T세포 활성화와 사이토카인(IL-2) 분비가 억제되는 기전이다.
HPK1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면 억눌려 있던 T세포와 수지상세포의 항암 면역 능력을 동시에 재활성화할 수 있는 것으로, 국내외 제약사들은 새로운 면역항암제 표적으로 HPK1을 주목하고 있다.
'서브-나노몰' 수준 저해 활성 … 독자적 화합물로 오프타깃 부작용 돌파
SK케미칼이 자체 확보한 신규 화합물 139종의 HPK1 억제 효능을 평가한 결과, 대다수 물질이 나노몰(nM) 및 피코몰 수준의 낮은 농도에서 탁월한 HPK1 저해 활성을 보였다.
그중 가장 우수한 화합물은 HPK1 효소 저해 활성을 나타내는 IC50 값이 0.08nM(나노몰)에 불과해 '서브-나노몰(Sub-nanomolar, 1나노몰 미만의 아주 작은 농도)' 수준의 효능을 나타냈다.
다만, 25nM 농도에서의 저해율이 82.2%로 조금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IC50 값은 이보다는 조금 높은 0.36nM을 기록했지만, 25nM 농도에서의 저해율이 90.6%로 매우 높은 화합물도 함께 발굴되면서 회사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이러한 화학 구조적 최적화는 신약의 핵심 요건인 수용해도와 세포막 투과성, 대사 안정성 등 약동학적(PK) 물성 개선으로도 이어졌다는 평가다.
HPK1 억제제 개발에는 구조가 매우 유사한 다른 MAP4K 계열 효소나 T세포 신호 전달의 핵심인 ZAP70 효소를 건드리지 않는 고난도의 선택성 확보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ZAP70이나 ROCK2 등 오프타깃(Off-target) 효소를 잘못 억제할 경우 오히려 면역 활성이 차단되거나 심각한 전신 독성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이 확보한 신규 화합물군은 HPK1 효소의 결합 포켓 내 핵심 아미노산 잔기와 정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도록 유도해 결합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오프타깃 저해를 최소화하고 HPK1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도록 설계된 것이 강점이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한계 정조준 … 면역관문억제제 병용 파트너 부상
SK케미칼의 이번 HPK1 억제제 개발 추진은 기존 '키트루다', '옵디보' 등 PD-1/PD-L1 계열 면역관문억제제 시장의 한계를 겨냥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재 PD-1/PD-L1 억제제는 항암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나, 20~30%에 불과한 반응률과 내성 발생이 한계로 지적됐다. HPK1 억제제는 현재 PD-1/PD-L1 억제제의 단점을 보완해 줄 병용 파트너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PD-1/PD-L1 억제제 시장이 오는 2035년 약 2000억 달러(한화 약 26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HPK1 억제제의 상업적 가치는 향후 수십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HPK1을 타깃으로 한 신약 개발 경주가 한창 진행 중이다.
HK이노엔은 경구용 HPK1 저해제 후보물질 'IN-122517'을 개발 중이다. 대장암 동물 모델에서 PD-1 항체와의 병용 투여 시 종양 완전관해(CR) 및 지속적인 면역기억 반응을 확인했으며, 올해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한양행 역시 피리미딘 유도체 중심의 HPK1 억제 화합물 연구를 진행, IC50 값이 10nM 이하인 다수 화합물을 발굴해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는 국내 기업 중 개발이 가장 앞선 상황으로, 후보물질 'FB849'의 글로벌 임상 1상 시험을 미국과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통적인 합성신약과 백신, 천연물 의약품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온 SK케미칼이 HPK1 억제제라는 고부가가치 포트폴리오를 신약 파이프라인 후보 명단에 추가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체질 개선에도 속도가 더해지는 모습이다.
차세대 면역항암제 타깃 선점을 둘러싼 글로벌 빅파마와 국내 제약사들의 개발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SK케미칼이 HPK1 억제제 개발을 본격화해 면역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