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E(종양 미세환경) 개선제가 고형암 치료에서 다양한 항암제와 병용하는 플랫폼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만든 이미지.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면역항암제 불응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차세대 항암제 개발의 중요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암세포의 서식지를 통째로 바꾸는 '종양미세환경(TME, Tumor Microenvironment) 개선제'가 그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특정 암종에 갇히지 않고 여러 고형암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범용 병용 플랫폼'이 그것이다.
2010년대 중반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 '옵디보(Opdivo, 성분명: 니볼루맙·nivolumab)' 등 PD-1 계열 면역항암제는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지만, 단독요법 기준 객관적 반응률은 여전히 20%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머지 80% 환자는 약물이 개발됐으나,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면역항암제 한계, TME 개선제가 돌파구로 부상
면역항암제 불응 환자들의 공통점은 T세포가 종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들어가더라도 면역억제 세포와 저산소·산성 환경에 눌려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TME 개선제는 물리적 장벽, 면역억제 세포, 대사 환경을 조절해 항암제가 암세포와 싸울 여건을 만든다. 최근에는 면역항암제 뿐 아니라 표적항암제나 ADC(Antibody-Drug Conjugate, 항체약물접합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병용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물리 장벽·면역억제·대사 환경…3가지 기전으로 공략
현재 개발 중인 TME 개선제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고형암을 공략하고 있다.
첫째는 물리적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다. 췌장암처럼 섬유성 기질이 두꺼운 암종은 내부 압력이 높아 약물 침투가 어렵다.
미국 할로자임 테라퓨틱스(Halozyme Therapeutics)가 개발한 히알루론산 분해 효소 'PEGPH20'은 전이성 췌장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HALO-301)에서 1차 평가변수인 전체생존기간(OS) 개선에 실패했고, 회사는 2019년 종양학 사업부를 철수했다.
그러나 이 실패는 기전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적절한 환자 선별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는 FAK 억제제나 로사르탄 기반 기질 조절을 통해 콜라겐·섬유화 장벽을 낮추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FAK 억제제 분야의 대표적인 개발사는 미국 베라스템 온콜로지(Verastem Oncology)다. 이 회사는 FAK 억제제 데팍티닙과 RAF/MEK 억제제 아부토메티닙을 젬시타빈·nab-파클리탁셀 표준 화학요법에 더한 임상 1b/2상 RAMP 205를 진행 중이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라케시 제인 박사 연구팀은 로사르탄을 FOLFIRINOX(폴피리녹스, 옥살리플라틴·이리노테칸·류코보린·5-플루오로우라실 4제 병용 화학요법)과 병용하는 임상 2상을 통해 섬유화 기질 감소 및 약물 전달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기반으로 후속 다기관 임상을 진행 중이다.
둘째는 면역억제 세포를 재편하는 전략이다. 종양 내부에 포진해 면역을 억제하는 골수유래 면역억제세포(MDSC)나 종양 관련 대식세포(TAM)를 제거해 '차가운 종양'을 '뜨거운 종양'으로 바꾼다.
대표적인 접근이 CD40 작용제(agonist) 계열이다. 미국 파이로시스 온콜로지(Pyxis Oncology, 구 아펙시거)가 개발한 CD40 작용제 항체 소티갈리맙(sotigalimab, APX005M)은 선천·적응 면역 반응을 동시에 자극하고 TAM을 직접 겨냥하는 기전으로, 항PD-1 치료 후 진행된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니볼루맙과의 병용 임상 2상을 완료했다.
베라스템 온콜로지의 데팍티닙(defactinib)은 FAK 억제를 통해 섬유화 기질 감소와 면역억제 세포 침윤 억제라는 두 기전을 동시에 노린다는 점에서 첫째와 둘째 전략을 아우르는 약물로 꼽힌다.
셋째는 대사 환경을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암세포가 만든 저산소·산성 상태를 개선해 면역세포 기능 회복을 유도하는 접근법이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개발한 올레클루맙(oleclumab, MEDI9447)은 종양이 면역세포를 무력화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아데노신 생성 효소 CD73을 차단하는 항체다. 2015년 임상 1상(NCT02503774)을 시작해 대장암·췌장암·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더발루맙과의 병용 안전성과 항종양 활성을 확인했다.
현재는 더발루맙과의 병용으로 수술 불가능한 3기 비소세포폐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PACIFIC-9(NCT05221840)이 진행 중이다.
"하나의 약물로 여러 암종 공략"…플랫폼 경쟁 본격화
제약사들이 이 기전들에 지갑을 여는 이유는 TME 개선제의 확장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정 유전자 변이만 겨냥하는 표적항암제와 달리, 섬유화나 저산소 같은 TME 특성은 대다수 고형암이 공유하는 공통 분모다. 즉, 하나의 TME 개선제가 폐암, 췌장암, 간암, 대장암을 가리지 않고 기존 항암제들의 효능을 높이는 범용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애브비(AbbVie)가 올해 1월 중국 리메젠으로부터 총 56억 달러 규모에 도입한 PD-1/VEGF 이중항체 'RC148'도 대표적인 사례다. 애브비는 VEGF 억제를 통한 혈관 정상화가 면역세포와 ADC(항체약물접합체)의 종양 내 침투를 높일 것으로 보고, 이를 다양한 고형암 대상 ADC 병용 파트너 플랫폼으로 낙점했다.
국내 기업인 페니트리움바이오사이언스도 이러한 범용성 전략에 승부수를 띄웠다. 회사는 미국암연구학회 2026 연례학술대회(AACR 2026)를 계기로 UC샌디에이고 무어스암센터 산딥 파텔 교수와 협력해 FDA에 '바스켓 임상' 신청을 추진 중이다. 바스켓 임상은 하나의 약물을 여러 암종에 동시에 적용해 효과를 확인하는 설계다.
조원동 페니트리움바이오사이언스 회장은 "페니트리움은 상수로 두고, 각 암종별 표준 표적항암제와 병용하는 설계"라며 "TME의 공통 요소가 암세포의 이질성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 범용 효과의 강력한 근거"라고 강조했다.
거대한 고형암 시장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병용 플랫폼 선점을 두고 빅파마와 바이오텍의 각축전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