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트론 사옥[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경쟁 축이 약효에서 제형 기술로 넓어지고 있다. 같은 약물을 쓰더라도 이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편하게 몸 안에 전달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미국당뇨병학회 2026 연례학술대회(ADA 2026)에서 국내 약물전달 플랫폼 기업 펩트론(Peptron)의 장기 지속형 비만 치료 후보물질 'PT403'이 관심을 끈 배경도 여기에 있다. 'PT403'은 기존 주 1회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제제를 월 1회 투여 제형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미립구 균일화 기술을 통해 초기 과다 방출과 위장관계 부작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입자의 균일성이 결정하는 차세대 GLP-1 경쟁력
월 1회라는 투여 간격만 놓고 보면 'PT403'은 유일한 후보가 아니다. 펩트론의 차별점은 '어떻게 오래 가게 만드느냐'에 있다. 'PT403'은 '세마글루타이드'를 미립구(微粒球·microsphere)에 담아 방출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특히 작은 입자의 크기를 균일하게 만들어 초기 과다 방출을 억제하고, 한 달 동안 약물이 비교적 평탄하게 방출되도록 한 점이 다른 장기지속형 제형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장기 지속형 주사제에서 입자 균일성은 약효와 안전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입자 크기가 고르지 않으면 작은 입자부터 먼저 녹으면서 주사 직후 약물이 한꺼번에 방출될 수 있다. 이른바 '초기 과다 방출(initial burst)'이다. GLP-1 계열 약물은 혈중 농도가 급격히 오를 경우 메스꺼움, 구토 등 위장관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초기 방출 제어가 특히 중요하다.
펩트론이 부각한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알갱이의 크기와 표면적을 일정하게 만들면 체내에서 녹는 속도를 예측하기 쉽고, 약물 방출도 한 달 동안 비교적 고르게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발표에서 'PT403'의 최고-최저 농도비(Peak-to-Trough)는 1.4로 나타났다. 주사 후 가장 높은 농도와 가장 낮은 농도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효과와 안전성 신호도 함께 제시됐다. 비만 마우스 모델에서 'PT403' 투여군은 4주 시점에 약 30%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건강한 성인 대상 안전성 평가에서는 기존 '세마글루타이드' 주 1회 투여군과 달리 구토와 메스꺼움이 관찰되지 않았다. 균일한 미립구가 약물 농도의 출렁임을 줄이고, GLP-1 계열 약물의 대표 부작용을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상용화 과제 속 '스마트데포'가 남긴 분명한 메시지
자가투여 편의성도 경쟁력으로 제시됐다. 기존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입자가 뭉치거나 가라앉기 쉬워 굵은 바늘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펩트론은 초음파 분무 건조(Ultrasonic Spray Drying) 기술로 20±3㎛ 수준의 균일한 미립구를 구현했다. 입자 크기 편차가 작고 뭉침이 줄어들면 주사액 흐름이 안정돼 인슐린 주사에 쓰이는 수준의 얇은 바늘로도 투여가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PT403'은 단순한 월 1회 세마글루타이드 제형을 넘어, 장기 지속형 비만 치료제의 제조공학적 해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약물 구조 변경이나 반감기 연장으로 지속성을 확보해 온 것과 달리, 펩트론은 약물을 담는 미립구의 균일성을 통해 방출 속도와 투여 편의성을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장 관심도 이 기술에 집중되고 있다. 펩트론은 2024년 10월 일라이 릴리와 자사의 약물 전달 기술인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 평가 계약을 맺었다. 해당 평가는 올해 말 마무리될 예정으로, 본계약 체결 여부가 기업 가치 제고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펩트론은 'PT403'뿐 아니라 GLP-1·GIP 이중작용제 'PT404'까지 성과가 확인될 경우 대규모 기술수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펩트론의 'SmartDepot™' 기술을 적용한 미립구 제조과정 (자료=펩트론)주 1회가 아닌 월 1회 주사하는 비만약은 이미 글로벌 빅파마의 격전지다. 일라이 릴리는 스웨덴 카무러스(Camurus)의 장기지속형 기술 '플루이드크리스탈(FluidCrystal)'을 도입했고, 암젠은 자사의 차세대 비만치료제 '마리타이드(MariTide)'의 임상를 통해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유효성을 평가 중이다. 특히 암젠은 월1회 제형인 '마리타이드'를 8주 또는 3개월 간격으로 투여하는 임상도 진행 중이다.
다만 펩트론은 건조 분말 미립구 방식이라는 별도 기술을 축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PT403'은 아직 임상 1상을 앞둔 단계다. 상용화까지는 임상 검증과 대량 생산 안정성, 장기 안전성 확인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ADA 2026 발표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월 1회 GLP-1 주사제의 경쟁력은 거대한 신약 설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립구를 얼마나 균일하게 만들 수 있느냐에도 달려 있다는 점이다. 펩트론의 '스마트데포'가 세계의 관심을 끈 이유도 바로 그 작은 입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