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FDA 사상 초유 지휘부 공석 ... '원칙주의 회귀'에 K-바이오 심사 안개속마카리 체제 규제완화 종말 ... '전통 관료' 데이비스 대행 체제 등판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지휘부가 동시에 공석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당장 오는 7월 23일 전문의약품 신약 승인 심사 기한(PDUFA 목표일)을 앞둔 에이치엘비(HLB)의 간암 신약 물질 '리보세라닙(Riboceranib, 개발명 : YN968D1)'을 비롯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던 국내 신약의 FDA 승인 전선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전임 지휘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보완 자료를 준비해 온 국내 기업들의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규제 완화' 마카리 시대 종말과 정통 관료 데이비스의 등판
지난 1년간 한국 바이오 기업이 FDA를 공략하며 다듬어 온 대응 전략은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국장의 정책 방향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신약 심사 가속화, 동물실험 대체법(NAMs) 도입 확대, 바이오시밀러 우대 조치 같은 정책 기조가 그것이었다. 국내 기업들의 보완 서류 양식부터 임상 디자인, 자료 제출 시점까지의 시나리오는 마카리 체제 좌표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좌표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마카리 국장과 의약품평가센터(CDER) 센터장 대행 트레이시 베스 호에그(Tracy Beth Høeg)의 동반 퇴진은 마카리 전임 체제의 규제 완화 기조에 개혁을 칼날을 들이 댄 FDA 내부 정통 관료들과 심사관들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숙청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외신의 분석이다. 같은 시기 생물의약품평가센터(CBER) 센터장 대행 캐서린 자라마(Katherine Szarama)와 국장 비서실장 자리도 새 인물로 교체됐다.
호에그 대행이 빠진 자리는 마이클 데이비스(Michael Davis) CDER 신임 센터장 대행이 채웠다. 데이비스 대행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CDER 정신의학과에서 임상팀장을 지낸 FDA 내부 출신 인사다. 2022년 FDA를 떠나 비영리 의약품 연구기관에서 의료책임자(CMO)로 일하다가 2025년 CDER 부센터장으로 복귀한 뒤, 호에그 해임과 함께 센터장 대행 자리에 올랐다.
엄격해질 제조품질관리 ... 새 지휘부 심사 가늠할 3대 변수
데이비스 체제가 앞으로 어떤 심사 기조를 가져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지만, 마카리 국장 시절의 파격적 유연성이 그대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가 주목하는 변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제조품질관리(CMC) 심사의 엄격성이다. 마카리 시절 일부 사안에서 서류·실사 절차를 유연하게 처리했던 관행이 이어질지, 아니면 데이터 무결성 원칙을 고수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둘째는 신약 심사 가속화 기조의 향방이다. 마카리 체제가 추진한 가속 심사 정책이 후임 체제에서 유지될지, 전통적인 표준 심사 기간으로 회귀할지 여부다. 셋째는 정치적 외풍에 대한 거리두기다. 마카리 체제 후반 백악관과의 갈등이 심화됐던 만큼, 새 지휘부가 FDA 표준운영절차 매뉴얼을 어디까지 고수하느냐에 따라 심사 속도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운명의 첫 타자 HLB ... 데이터 완결성보다 '심사관 성향'이 열쇠
이 불확실성 앞에 가장 먼저 서는 국내 기업은 HLB다. HLB는 올해 1월 23일 '리보세라닙(Riboceranib)'+'캄렐리주맙(Camrelizumab)' 병용요법의 FDA 3차 재신청을 완료하고 올 상반기 안에 미국 상업화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팎에 내비쳤다. 두 차례 보완요구서한(CRL)의 원인이 효능이 아닌 파트너사 항서제약의 CMC 문제였던 만큼, 회사는 완벽한 보완을 자부해 왔다.
이를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 CMC 전문가인 김태한 회장을 영입하고, 글로벌 3상에서 확인된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 23.8개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왔다. 진양곤 HLB그룹 의장은 지난 12일 '2026 HLB 포럼'에서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두 개의 항암제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며 "신약 허가를 받으면 HLB가 글로벌 제약사로 수직 도약하는 큰 흐름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PDUFA를 두 달 앞둔 지금, 상황은 급변했다. 두 차례 CRL을 검토했던 기존 항암제 심사 라인이 마카리 체제에서 한 차례 재편됐고, 데이비스 체제에서 또 한 번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새 심사 책임자가 항서제약 공장 재실사 결과와 CMC 보완 자료를 과거의 맥락대로 이어받아 평가한다면 올해 초 가졌던 장밋빛 기대는 한순가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PDUFA를 2개월 남짓 앞둔 현재 시점에서 리보세라닙 승인의 최대 변수는 CMC의 완결성 자체가 아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믿었던 그 CMC 자료를 새로 바뀐 심사 책임자가 어떤 방향에서 들여다볼지가 진짜 변수다.
리라푸그라티닙·토베시미그 ... 하반기 美 허가 전선 도미노 영향권
임시 지휘부 체제에서의 심사 변수는 리보세라닙 한 건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하반기 미국 심사 또는 허가 신청 절차를 밟는 다른 국내 관련 파이프라인도 같은 운명 앞에 놓였다.
HLB는 리보세라닙 재신청 직후인 지난 1월 27일, 담관암 표적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lirafugratinib)'의 미국 품목허가도 신청했다. FDA는 이 신청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접수했고, 승인 여부 판단 목표일(PDUFA date)을 오는 9월 27일로 정했다. 이에 따라 HLB는 7월 23일 '리보세라닙', 9월 27일 '리라푸그라티닙'까지 두 건의 항암제 승인 여부 판단을 불안정한 임시 지휘부 체제에서 받게 됐다.
에이비엘(ABL)바이오의 담도암 이중항체 신약 후보 '토베시미그(tovecimig, 개발명 ABL001)'도 FDA 리더십 변화의 간접 영향권에 있다. 미국 파트너사 컴퍼스 테라퓨틱스(Compass Therapeutics)는 임상 2/3상 'COMPANION-002'에서 '토베시미그' 병용요법이 객관적 반응률(ORR) 17.1%를 기록해 대조군 5.3% 대비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진행생존기간(PFS)도 4.7개월로 대조군 2.6개월보다 길었다. 다만 전체생존기간(OS)은 교차투여 등의 영향으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컴퍼스 테라퓨틱스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FDA와 논의한 뒤 '토베시미그'의 BLA(생물의약품 허가신청) 제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아직 PDUFA 목표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ORR을 중심으로 한 허가 전략, 희귀질환·패스트트랙 지정, 담도암이라는 미충족 수요가 큰 적응증이라는 점에서 FDA가 가속 승인·조건부 판단 기조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다.
결국 HLB '리보세라닙'의 PDUFA 결과는 마카리 체제 이후 FDA의 새 심사 방향이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는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