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치매의 원인을 살아있을 때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진단법이 개발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인공지능 제작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알츠하이머 치매의 완치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베타 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들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교착 상태를 타개할 정밀 진단 기술이 등장해 이목을 끈다. 단순히 아밀로이드 축적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치매의 근본 원인 단백질을 직접 판별해 내는 이 진단법은 기존 치매 진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아밀로이드 타깃 약물의 한계와 '나머지 30%'의 문제
현재 치매 치료의 주류는 뇌에 축적된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표적하는 항체 약물을 투약하여 알츠하이머병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일본 에자이(Eisai)의 베타 아밀로이드 항체 약물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lecanemab)'가 대표적이다.
베타 아밀로이드 항체 약물은 단백질 제거 효과 면에서는 유의미하지만, 환자가 체감하는 실질적인 인지 기능 개선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반응도 냉담해 '레켐비'의 매출은 여전히 기대치인 10억 달러(약 1조 4300억 원)를 밑도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의학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제기된다. 이미 제거된 베타 아밀로이드와 별개로 소멸된 신경세포를 복구할 수 없다는 점과 환자의 치매 원인 자체가 알츠하이머병이 아닐 가능성이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은 전체 치매 환자의 약 70%를 차지하는 주요 원인이지만, 나머지 30%는 이와 무관한 다른 유형의 치매다. 즉, 베타 아밀로이드와 상관없는 나머지 30%의 환자군은 항체 약물을 투약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생검 불가능했던 치매 진단, 뇌척수액으로 길 열어
문제는 현재의 의료기술로는 이 나머지 30%의 치매 유형을 정확히 감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확진을 위해서는 생존해 있는 환자의 뇌 조직을 직접 떼어내는 생검이 필요하지만, 장기의 특성상 위험도가 매우 높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치매 유형 분포는 사후 부검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의미없는 원인 파악인 셈이다. 임상 현장 대부분의 환자를 알츠하이머병으로 간주하고 일단 베타 아밀로이드 항체 약물을 투약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의료센터(UMC)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결과는 획기적이다. 뇌 조직 생검 없이 뇌척수액(CSF) 분석만으로 전두측엽 치매 유형을 감별할 수 있는 진단법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그간 알츠하이머병으로 오인되어 부적절한 치료를 받아온 환자들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TDP-43' 단백질 감별 성공 … 맞춤형 정밀 치료 기대
전체 치매의 약 10%를 차지하는 전두측엽 치매는 기억력 저하보다 성격 변화, 언어 장애, 이상 행동 등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전두측엽 치매는 신경세포 사멸의 주원인이 베타 아밀로이드 관련 타우 단백질뿐만 아니라 'TDP-43'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에 의해서도 발생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연구팀은 타우 단백질 내 특정 지점의 아세틸화 수치(AcTau174)를 측정하는 면역 분석법을 개발했다. 이를 치매 환자의 뇌척수액에 적용한 결과, 해당 수치는 치매 환자 전반에서 높게 나타났으나 특히 'TDP-43'이 원인인 환자군에서 가장 두드러진 수치를 보였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타우형 전두측엽 치매와 TDP형 전두측엽 치매를 높은 정확도로 구분해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그동안 전두측엽 치매는 뇌 속 원인 단백질을 몰라 눈을 감고 치료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며 "이번 진단법 발견을 통해 환자 개개인의 병리에 맞춘 정밀 치료가 치매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도 게재되면서 의료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