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의 환상과 '계륵'의 현실 사이에서
인류 의학사는 '정복'의 역사였다.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쳤던 약물들이 질병의 근본 원인을 수정하는 '세포·유전자 치료제(CGT)'의 등장으로 마침내 종전을 선언하는 듯했다.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암을 뿌리 뽑는 '기적의 신약' 앞에 자본은 열광했고, 글로벌 빅파마들은 수조 원의 베팅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시장의 공기는 싸늘하다. 7억 원을 호가하는 '집 한 채 값'과 고형암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기적은 '비싼 계륵'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화이자(Pfizer)와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등 글로벌 제약사들마저 잇따라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며 '손절'에 나선 지금, 우리는 혁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 기술은 과연 뜬구름 잡는 신기루인가, 아니면 더 큰 도약을 위한 사춘기의 뼈아픈 혁명인가. 헬스코리아뉴스가 세포·유전자 치료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속 가능한 해법을 상·중·하 시리즈로 진단했다.
[上] 환호의 시대 : '종전 선언' 꿈꾼 원샷 치료제의 화려한 등장
[中] 침체의 시대 : 7억 원의 무게와 고형암이라는 거대한 벽
[下] 재편의 시대 : '뉴 게임 체인저' 혹은 '실리적 니치 마켓'
세계적으로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진:포토애플=메디포토>[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초창기 쏟아졌던 광기 어린 찬사가 무색할 만큼, 현재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둘러싼 공기는 차갑게 식었다. 이 기적의 신약은 천문학적인 제조 단가와 적응증 확대의 한계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넘지 못한 채, '비싼 계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환상이 걷힌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자본의 계산기와 절망적인 환자들의 한숨뿐이다.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환자 개개인의 세포 및 유전자를 수집한 다음 정확히 재조합하여 맞춤형으로 제작해야 한다. 이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복이 아니라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드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방식이다. 문제는 이 환자 맞춤형 특성이 대규모 생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투입된 천문학적 비용을 회수하려면 치료 단가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고비용 구조는 환자와 의료 시스템에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 재앙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미국 기준 '킴리아(Kymriah, 성분명 : 티사젠렉류셀·Tisagenlecleucel)'의 1회 투약 비용은 평균 47만 5000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억 원을 훌쩍 넘어 8억 원에 가깝다. 환자 입장에서는 약 한 번 쓰기 위해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야 하는 냉혹한 상황인 셈이다. 이로 인해 기업이 의약품 허가를 자진 철회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국 블루버드 바이오(Bluebird Bio)는 지난 2019년 자사의 유전자 치료제 '진테글로(Zynteglo, 성분명 : 베티베글로진 오토템셀·Betibeglogene Autotemcel)'의 유럽 허가를 취득했지만, 1회당 180만 달러(한화 약 23억 원)라는 황당한 가격표 탓에 독일 등 유럽 주요국 정부와의 약값 협상에서 잇따라 문전박대를 당했다. 결국 블루버드 바이오는 2021년 8월 유럽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적응증 확대의 한계 역시 성장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혁신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여전히 혈액 질환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혈액 질환이 가진 연구와 치료의 용이성 때문인데, 혈액은 채혈을 통해 샘플을 확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질병 상태를 알리는 바이오마커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체외에서 재조합한 세포를 다시 채내로 넣을 때, 혈관을 이용하는 방식은 기술적으로 가장 간결하고 확실하다. 전신을 순환하는 혈액의 특성상 약물을 투여하는 즉시 질병 부위에 도달해 화력을 퍼부을 수 있다는 점이 혈액 질환이 첫 적응증이 된 결정적 이유였다.
하지만 혈액에서 누렸던 이러한 강점들은 역설적으로 비혈액 질환, 그중에서도 암 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고형암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거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CAR-T 역시 고형암 정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암세포 주변을 철갑처럼 둘러싼 '종양미세환경(TME)'이라는 견고한 요새를 뚫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종양미세환경(TME) = 암세포를 둘러싼 주변 조직과 혈관, 면역세포 등을 포함한 복합적인 생태계를 뜻한다. 단순히 암세포가 존재하는 공간을 넘어 암의 성장과 전이를 돕는 기지 역할을 한다. 세포·유전자 치료제에 있어 TME는 고형암 정복을 가로막는 가장 거대한 물리적 장벽이다. 이 구조는 치료제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며, 암세포가 내뿜는 면역 억제 물질(TGF-beta 등)은 요새를 간신히 뚫고 들어온 세포의 활성마저 급격히 저하시켜 무력화한다.
이에 따라 세포·유전자 치료제 시장 전망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시장조사업체 딜포머(Dealform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해당 기술 거래는 총 34건, 거래 규모는 14억 달러(한화 약 2조 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기 전인 지난 2018년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한때 인류 의학사의 '종전 선언'을 꿈꿨던 기적의 기술은 이제 자본의 인내심과 과학적 한계 사이에서 처절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