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암센터 암전이연구과 정희선 박사 [사진=국립암센터][헬스코리아뉴스 / 박원진] 자가포식 단백질인 'ULK1(Unc-51-like kinase 1)'이 췌장암 세포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됐다. 국립암센터(NCC) 암전이연구과 정희선 박사 연구팀은 ULK1을 억제할 경우 췌장암 성장을 저해함과 동시에 항암 면역 기능을 대폭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췌장관선암(PDAC, 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은 산소와 영양분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대표적 난치암이다. 암세포가 이런 극한 환경에서 버티는 비결은 세포 내 불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분해해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자가포식(Autophagy)' 시스템 덕분인데,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핵심 스위치가 바로 'ULK1' 단백질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ULK1 스위치를 끈 췌장암 마우스 모델을 분석했다. 그 결과, ULK1이 결핍된 암세포는 에너지 재활용을 하지 못해 성장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종양 주변의 '암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이 완전히 뒤바뀌는 현상이 관찰됐다. 기존에는 암세포의 생존을 돕고 면역 세포의 활동을 방해하던 인자들이 약화된 반면, 암과 맞서 싸우는 항암 면역 세포들은 오히려 활성화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췌장암 환자의 조직 분석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분석 결과, ULK1 활성이 높은 환자일수록 췌장 내 항암 면역 세포의 활성이 억제되어 있었다. 이는 ULK1이 임상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치료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ULK1 억제가 암세포의 생존 신호를 차단하는 동시에 면역 체계를 재가동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연구는 ULK1 결손 췌장암 세포 모델과 이를 활용한 동종이식 마우스 모델, 췌장 특이적 ULK1 결손 유전자 변형 모델 등을 직접 제작·분석해 ULK1이 췌장암 발달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생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정희선 박사는 "이번 연구는 단순한 자가포식 억제를 넘어 암 미세환경 자체를 항암 면역에 유리하도록 재편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향후 췌장암 환자를 위한 정밀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실험 및 분자의학(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 2025년 12월호에 게재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