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면역 반응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스위치(Switch)가 발견되면서 암과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지 주목된다.
국제 학술지 네이쳐(Nature)는 지난 10일(현지 시간), 이런 내용을 담은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에드거 엥겔만(Edgar Engelman) 교수팀의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해당 연구는 면역 세포가 공격할지, 혹은 관용할지 결정하는 단일 신호 경로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관용은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말한다. 조절 T세포(Treg)는 이 기능의 핵심 세포로, 혈액 속을 순환하는 면역세포를 감시하며 다른 세포에 대한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Treg는 면역 반응을 강화해 암에 대한 공격력을 높이거나, 반대로 면역 반응을 억제해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유망한 표적으로 여겨져 왔다.
다만 지금까지 Treg의 활성을 직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전이 밝혀지지 않은터라, Treg 작용은 그저 이론적인 개념에만 머물러 왔다.
예컨대 미국 바이오 벤처 기업인 리사타 테라퓨틱스(Lisata Therapeutics)는 Treg를 배양하여 재조합한 세포 치료제 후보물질 'CLBS03'을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제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 임상시험에서 평가한 바 있다.
리사타 측의 가설은 'CLBS03'을 통해 Treg의 체내 수치를 높이고 면역 세포의 활성을 낮추면, 췌장에서 인슐리 분비를 촉진하는 베타 세포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상시험 결과, 'CLBS03'은 안전성만 확인되었을뿐,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생성을 유의미하게 개선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적혈구 생성 호르몬(EPO)의 신호 전달 경로가 단순히 적혈구 생성에 그치지 않고, 면역세포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보고되었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EPO 경로가 그동안 꿈에 그리던 Treg를 실제로 조절할 수 있을 지 확인할 수 있는 비임상 동물 실험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먼저 생쥐의 흉선, 비장, 림프절을 제거하여 면역 세포인 T세포와 B세포의 분비 기능을 차단했다. T세포의 일종인 Treg 생성도 차단되었다.
단, Treg의 활성을 유도하는 수지상세포들은 남겨두었다. 이를 통해 EPO 신호가 수지상세포를 매개로 Treg를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다.
그 결과, 수지상세포에서 EPO 수용체의 발현이 크게 증가했고 혈중 EPO 농도 역시 함께 상승했다. 이를 종양 이식 생쥐 모델에 적용하자, 이식편대숙주반응(GVHD)과 유사한 면역 거부 반응이 뚜렷하게 증가했으며, 동시에 종양 조직의 크기도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팀은 EPO 경로가 적혈구 생성 증가뿐만 아니라 면역 반응 조절의 근본인 Treg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결론 맺었다.
만약 이러한 기술이 향후 약물로 개발될 경우, 암과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