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 감염을 바이러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이이제이' 공략법이 주목받고 있다.
박테리아는 땅, 물, 공기와 같은 곳은 물론 인간의 위장 등 다른 생명체 안에서도 기생할 수 있는 작은 단세포 생물이다. 종류는 수천 개에 이르며 자연계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방사성 폐기물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도 보고된 바 있다.
생명체는 대체로 자체 기생하는 박테리아와 함께 진화해 왔기 때문에 단순히 박테리아가 몸 속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테리아가 평소 접근이 제한되었던 조직에 침입할 경우 상황이 달라지는데, 이를 박테리아 감염이라고 한다
박테리아 감염은 주로 식도, 피부, 장에서 발생한다. 심장, 폐, 신경계, 신장에서 이런 감염이 나타나면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같은 일부 박테리아 감염은 암 발생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이러한 박테리아 감염에 대한 표준 치료법은 항생제 투약이다. 항생제는 푸른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로부터 항생 물질을 수집한 다음 박테리아만을 특이적으로 겨냥하도록 설계된 '맞춤형 박테리아 킬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박테리아가 우리 몸에 기생하며 함께 진화해 온 만큼, 항생제로 일부가 사라져도 살아남은 일부 개체들이 항생제에 더욱 강력하게 적응하며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슈퍼 박테리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부터 슈퍼 박테리아를 '조용한 팬데믹(Silent Pandemic)'이라며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그만큼 슈퍼 박테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 항생제 개발은 시급한 과제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까지 슈퍼 박테리아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항생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익성이다. 새로운 항생제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비용 대비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박테리아 감염으로 공중 보건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기에 항생제 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가로 악명 높은 미국에서조차 항생제 가격은 10~72 달러에 불과하다.
그래서 요즘 주목받는 치료법이 바이러스를 통해 박테리아를 사멸시킬 수 있는 '파지 요법'(Phage Therapy)이다.
문제 터지자 이제야 눈길 받는 과거 치료법
파지 요법은 박테리아를 사멸시키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이용해 박테리아 감염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겉보기에는 최첨단 세포 치료법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파지 요법은 새로운 혁신 기술이 아니다. 항생제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부터 이미 확립된 치료법 중 하나다.
다만 당시 파지 요법은 바이러스를 통해 박테리아 감염을 간접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이라 표준화 및 안전성 확보, 복잡한 생산 관리 측면에서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예컨대 박테리아는 수십억 년 동안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숙주와 함께 진화해 왔고, 이로 인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박테리아에 익숙해진터라 박테리아 감염에 보통은 속수무책이다.
이때 파지 요법처럼 바이러스를 이용해 박테리아를 치료할 경우,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이 바이러스를 외부 병원체로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어 대응한다.
따라서 동일한 박테리아 감염이 반복되더라도 다시 주입된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를 공격하기도 전에 면역 세포에 의해 제거된다. 결과적으로 파지 요법은 1회 치료제에 불과한 셈이다.
당시 의료계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파지 요법이 아닌 인체에 무해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던 항생제를 선택했던 이유다.
그런데 슈퍼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 문제가 최근 글로벌 공중 보건 위기로 부상하자 뒤늦게 파지 요법이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파지 요법에 공을 들이고 있는 기업은 캐나다 사이토파지 테크놀로지(Cytophage Technologies)다. 이 회사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의 매개체로서 박테리아 감염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파지 요법의 상업화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파지 요법이 폭발적인 업계의 관심을 받기보다는, 슈퍼 박테리아 문제의 대안적인 치료법으로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이토파지 테크놀로지를 제외하고는, 뚜렷하게 파지 요법 개발 계획을 공개한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 소규모 연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슈퍼 박테리아 대응 파지 요법의 상용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