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초구 효령로에 위치한 삼일제약 본사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파킨슨병 치료제 '에퀴피나(성분명: 사피나미드메실산염)' 제네릭 시장 선점을 위한 삼일제약의 행보가 매섭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목록에 등재된 특허를 무력화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이 목록에 없는 미등재 특허까지 겨냥하며 제네릭 조기 출시를 위한 장애물 제거에 나섰다.
삼일제약은 18일 뉴론 파마슈티컬스(Newron Pharmaceuticals)의 등록 특허 2건에 대한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특허심판원에 청구했다. 이번 심판의 타깃이 된 특허는 ▲2-[4-(3- 및 2-플루오로벤질옥시)벤질아미노]프로판 아미드의 제조방법(원출원 특허)과 ▲고순도의 2-[4-(3 또는 2-플루오로벤질옥시)벤질아미노]프로판아미드의 제조방법이다.
이들 특허는 식약처 의약품 특허목록(그린리스트)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나, 특허청에는 등록돼 여전히 독점적 효력을 발휘하는 미등재 특허, 이른바 '숨겨진 특허'들이다. 제네릭사가 등재 특허만 회피하고 제품을 출시할 경우, 오리지널사가 이 미등재 특허들을 근거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판매 금지 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어 제네릭 출시의 잠재적인 걸림돌로 꼽힌다.
앞서 삼일제약은 앞서 지난 9월 명인제약, 부광약품과 함께 에퀴피나의 유일한 등재 특허인 '2-[4-(3- 및 2-플루오로벤질옥시)벤질아미노]프로판 아미드의 제조방법' 분할출원 특허(2028년 만료)에 대해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해 청구성립 심결을 받아낸 바 있다.
이를 통해 우선판매품목허가 획득에 필요한 '최초 심판 청구' 요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불과 2개월 만에 가장 먼저 미등재 특허 공략에 시동을 걸며 경쟁사들과 격차 벌리기에 나선 것이다.
특히 '고순도의 2-[4-(3 또는 2-플루오로벤질옥시)벤질아미노]프로판아미드의 제조방법' 특허는 사피나미드 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독성의 불순물을 제어하는 핵심 기술과 연관됐다. 삼일제약이 이에 대해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했다는 것은 오리지널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독자적인 고순도 합성 공정이나 정제 기술을 이미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일제약이 선제적으로 에퀴피나 미등재 특허에 심판을 청구한 것은 제네릭 조기 출시를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며 "특허 걸림돌을 미리 제거해 제품 출시를 앞당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에퀴피나 제네릭 개발 경쟁은 삼일제약, 명인제약, 부광약품의 3파전 양상이다. 이들 3개 제약사는 재심사 기간(PMS)이 만료되는 내년 6월 23일 이후 일제히 품목허가를 신청하며 우선판매품목허가(우판권) 획득을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판권을 확보하더라도 미등재 특허가 남아있는 만큼, 이들 제약사가 곧바로 제네릭을 출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네릭 조기 출시를 강행한 뒤 미등재 특허 공략에 나설 수 있지만, 이는 위험 부담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삼일제약이 이번 심판을 통해 미등재 특허 리스크까지 해소한다면, '특허 분쟁의 소지가 없는 제네릭'이라는 마케팅 포인트를 선점해 병원 랜딩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점쳐진다.
에퀴피나는 뉴론 파마슈티컬스가 발굴한 3세대 모노아민 산화효소-B(MAO-B) 억제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판권은 에자이가 보유하고 있다. 에자이 국내 법인인 한국에자이는 지난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에퀴피나에 대한 품목허가를 획득해 이듬해 2월 급여 출시했다.
에퀴피나의 매출은 2021년 8억 원에 불과했으나, 2022년 28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으며, 2023년에는 이보다 20억 원 늘어난 48억 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