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 전경[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우선바우처(CNPV) 제도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혁신 의약품의 허가 지름길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FDA는 지난 6일(현지 시간), 두번째 CNPV 프로그램에 선정된 6개 의약품을 공개했다. FDA는 앞서 올해 10월 16일(현지 시간) 첫번째 CNPV 프로그램에서 9개 의약품을 선정한 바 있다.
FDA의 CNPV 프로그램은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CNPV가 의약품 허가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FDA의 신설 제도이기 때문이다.
CNPV는 미국 국가적 우선순위 목표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의약품의 심사기간을 기존 10~12개월에서 무려 1~2개월로 줄이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6월부터 공식 출범했다.
CNPV 의약품 선정 기준은 ▲공중보건 위기 대응 ▲미충족 의료 수요 ▲혁신 신약 등으로, 기존의 패스트트랙 개발 의약품 선정 기준과 유사하다.
여기에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의약품이어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하면 기준은 총 4개다. 마지막 기준은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스크 공급난이 글로벌 이슈로 떠올랐던 점을 고려하면 나름 합당한 조치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 네 가지 조건이 모두 '미국 국가적 우선순위 목표'라는 대전제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CNPV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적 우선순위 목표라는 명확하지 않고 불투명한 기준으로 인해 기업들은 정치적 연결고리를 통해 혜택을 받으려 하는 등 신약 허가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정경유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CNPV 프로그램은 그 구조상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FDA 책임자가 심사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정 유무가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민주당 소속 제이크 어친클로스(Jake Auchincloss) 의원은 올해 9월 CNPV에 대해 "법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선정 기준이 모호해 프로그램이 정치적 거래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에 각각 270억 달러와 10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약속한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이에 대한 대가로 3년간 관세 유예를 보장받았다.
의료계의 경우, 의약품의 허가가 충분한 과학적 검증 없이 진행되면 오히려 공중보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로버트 스타인브룩(Robert Steinbrook)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내과학 교수이자 비영리 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s) 산하 보건연구그룹 소속 박사는 "FDA의 신약 허가 심사가 간소화될 수록 약물의 안전성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FDA의 가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 제도다. 이 제도는 약물의 유효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2상 임상시험에서 관측된 일부 징후만으로 조건부 허가를 부여하는데, 이로 인해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로버트 스타인브룩 박사는 "CNPV 프로그램은 오로지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과 정부를 위한 크로니즘(연고주의)에 불과할 것"이라며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참고로 CNPV 프로그램은 1차 선정 당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2차 발표에서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 및 비만치료제가 포함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일라이 릴리 및 노보 노디스크와 당뇨 및 비만 약물에 대한 최혜국 약가 제공 계약을 체결하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