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최근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거대한 두 개의 파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미국의 바이오안보 전략에 따른 중국 의존도 탈피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요구하는 임상 데이터의 다양성 강화다. 특히 중국 임상 데이터만으로는 미국 시장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는 '미국인 환자 20% 참여' 원칙은 우리 바이오 산업에 위기인 동시에 전례 없는 기회 요인임을 시사한다.
그동안 중국은 압도적인 환자 수와 빠른 임상 속도를 무기로 전 세계 임상 연구의 40%를 독식해 왔다. 하지만 최근 FDA가 중국 데이터 위주의 신약 승인을 잇따라 거절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제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중국은 속도를 얻되 승인을 담보할 수 없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정권 교체와 무관한 상수(Constant)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치 특유의 펜듈럼(Pendulum, 추) 현상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면 현 정부의 바이오안보 정책이 뒤집히지 않을까 우려한다. 막대한 대미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이 차기 정부에서 손실을 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하지만 바이오안보와 공급망 독립은 미국 내 유일한 초당적 합의 사항이다.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이 보건 안보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등을 함께 준비해 온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정권에 따라 정책의 결은 바뀔 수 있으나, 의약품 원료와 생산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거대 담론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즉, 미국에 대한 투자는 일시적 정권에 대한 베팅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표준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적 생존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차이나 리스크'는 한국에 명확한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임상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가치 동맹국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의 대안을 찾고 있는 지금, '중국의 속도'를 대체할 '신뢰와 품질'의 임상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바이오 산업은 다음과 같은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단일 국가 임상의 한계를 넘어선 다지역 임상(MRCT, Multi-Regional Clinical Trial)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신약 개발 시 초기 단계부터 미국 환자 데이터를 포함한 글로벌 설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네트워크 지원이 시급하다.
둘째, 위탁개발생산(CDMO, 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역량을 넘어 위탁임상시험(CRO, 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의 질적 고도화를 이뤄야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서 고난도 세포·유전자 치료제(CGT)나 항체-약물 접합체(ADC) 임상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확보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관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변화를 활용한 실리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에 대한 투자를 손실로 우려하기보다, 미국의 보조금과 규제 안정성을 활용해 현지 거점을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 전략이 필요하다.
바이오 산업은 더 이상 기술력만의 싸움이 아니다. 규제와 정치, 그리고 외교가 얽힌 고도의 전략 게임이다. 중국의 약점이 드러나고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이 한국 바이오가 글로벌 표준의 중심에 서는 결정적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