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암 치료의 역사는 내성과의 끊임없는 전쟁이다. 특히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에서 '타그리소'라는 혁신적인 치료제가 등장했음에도, 인류는 다시금 'MET 유전자 증폭'이라는 내성의 벽에 부딪혔다. 최근 이 벽을 허물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한 'EGFR+MET 이중특이성 항체약물접합체(ADC)'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폐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이중특이성 ADC는 암세포의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차단하면서 강력한 항암제를 직접 전달하는 '정밀 유도탄'이다. 기존 항체가 암세포의 손발을 묶는 수준이었다면, ADC는 심장에 직접 타격을 가한다. 전 세계적으로 25개의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고, 그중 절반이 이미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이 기술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목전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기술의 화려함 뒤에 숨은 '냉혹한 시장의 판도'다. 임상 단계에 진입한 12개 후보물질 중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11개가 모두 중국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 글로벌 빅파마인 MSD조차 중국 기업에 거액의 선급금을 지불하며 권리를 사오는 현실은, 이미 중국이 '혁신 신약의 발원지'로 완전히 탈바꿈했음을 상징한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한때 'K-바이오'의 전성기를 꿈꿨던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쯤 서 있는가. 기초 연구의 성과를 상업화로 연결하는 '속도전'에서 우리는 이미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자본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의 핵심 파이프라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단순히 물량 공세만이 문제가 아니다. 과감한 임상 투자를 통해 후보물질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이를 글로벌 빅파마와의 라이선싱 아웃으로 연결하는 전략적 유연성에서도 중국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유망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자금 조달의 벽에 부딪히거나, 보수적인 규제와 임상 환경 탓에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제약 산업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EGFR+MET ADC는 폐암 치료의 '끝판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 결실을 누가 따먹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산업계는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차세대 모달리티(Modality)에 대한 집중적인 R&D 지원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속도감 있는 임상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중국 바이오의 거센 공세 속에서 K-바이오가 생존할 길은 결국 독보적인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할 전략적 생태계 조성뿐이다. 제2, 제3의 타그리소 내성을 극복할 혁신 신약이 대한민국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 골든타임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