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스코리아뉴스] 구명정을 만들던 회사가 항암신약으로 미국 FDA 문을 두드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 기업의 극적인 변신처럼 보이지만, HLB의 도전은 단순한 성공담이나 실패담으로 소비하기엔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도전의 결말은 한 기업의 운명을 넘어, 한국 바이오 산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HLB가 18년에 걸쳐 구축해 온 간암·담도암 파이프라인은 이제 임상적 의미와 시장성을 모두 갖춘 단계에 이르렀다. 글로벌 임상에서 확보한 생존지표와 반응률은 더 이상 '국내 기업치고는 선방했다'는 수준이 아니다. 글로벌 표준치료와 정면으로 경쟁 가능한 데이터다. 한국 바이오가 늘 강조해 온 '기술력'이 실제 수치로 증명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전략이다. HLB는 승인 이후를 대비해 직판(Direct Sales)이라는 고위험·고수익 모델을 선택했다.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을 넘기고 로열티를 받는 익숙한 길 대신, 글로벌 시장에서 스스로 가격과 유통을 결정하겠다는 선택이다. 이는 단순한 영업 전략이 아니라, 한국 바이오가 '연구개발 국가'에 머물 것인지 '완성형 제약 산업'으로 진화할 것인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하지만 이 도전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이유도 분명하다. HLB는 두 차례 FDA 보완요구서한(CRL)을 통해 임상 데이터가 아닌 제조·품질 관리(CMC)에서 발목을 잡혔다. 이는 특정 기업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반복적으로 마주해 온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연구와 임상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접근했지만, 글로벌 규제가 요구하는 제조 시스템과 데이터 무결성, 품질 문화에서는 여전히 학습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실제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HLB의 선택은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글로벌 CMO로 키워낸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생산·품질 시스템을 미국 cGMP 기준으로 재설계한 것은,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의 반영이다. 바이오 산업에서 마지막 문은 언제나 공장과 데이터, 그리고 규제 신뢰가 연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셈이다.
HLB가 개발한 신약의 FDA 승인 여부는 한 기업의 주가나 실적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는 한국 바이오가 신약 발굴부터 임상, 제조, 글로벌 상업화까지 전 주기를 감당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반대로 또다시 좌절된다면, 우리는 '왜 기술은 있는데 산업은 완성되지 못했는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구명정은 위기의 순간 사람을 살린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약 산업은 구명정과 달리, 기술만으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규제, 품질,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항로를 끝까지 통과해야 한다. HLB의 18년 여정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 바이오는 이제 실험의 단계를 넘어, 완주의 조건을 갖췄는가. 그 답이 머지않아 미국 FDA의 결정으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