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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만 찾는 ‘공공의료’…이번에도 위기 모면용 임기응변에 그칠까

이재혁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9 07: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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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이어 진료시간 연장 운영
병상가동률 회복 더디고 정부 지원은 미비
“필수‧지역의료 붕괴 막기 위해서도 공공의료 강화해야”
▲ 엔데믹 이후 공공병원을 외면했던 정부를 지적하며 전공의 사태로 인한 의료공백 대응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함께 근본적인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DB)

 

[메디컬투데이=이재혁 기자]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써 방역 최전선에 섰던 공공병원들이 이번엔 전공의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위기를 메우기 위해 투입됐다. 일각에선 엔데믹 이후 공공병원을 외면했던 정부를 지적하며 적정한 보상과 함께 근본적인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을 하루 앞두고,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을 발표했다.

비상진료대책에는 지방의료원,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 등 총 97개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평일 진료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과 공휴일 진료를 실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3월 18일 기준 공공의료기관 97개소 중 52개소는 진료시간을 연장해 운영하고 있으며, 12개 군 병원 응급실도 민간에 개방,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는 지난 코로나19 유행 당시에도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의료 위기에 대응했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전체 병상 수 9.7%에 해당하는 병상을 보유한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입원 환자의 3분의 2 이상을 치료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 환자들이 빠져나갔고, 엔데믹 이후 떠나간 환자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어려운 병원들은 경영난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보건의료노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전국 35개 공공병원의 병상가동률은 평균 48.53%에 불과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시기인 2019년 12월 당시의 병상가동률 평균 78.52%를 한참 하회하는 수치다.

하지만 정부의 회복기 손실보상금 지급 기간은 공공병원의 일상을 회복시켜주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서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예산마저 전년 대비 98.7% 줄였다. 특히 의료기관 등 손실보상 예산만 따져봐도 98.2%를 줄이는 등 사실상 전액 삭감한 것이다. 

 

▲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6월 13일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전담해 치료했던 지방의료원들이 정부의 보상지원금이 끝나면서 재정 상황 악화 등으로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제공)


그나마 지속적인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 촉구에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 정부예산 처리에서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 회복기 지원예산 1000억원이 통과됐을 뿐이다.

이처럼 코로나가 할퀴고 지나간 공공병원들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대한민국 의료는 또 한 차례 위기를 맞닥뜨렸고,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응해 공공병원의 진료시간을 연장하라고 지시한 것.

이에 시민사회에선 그간 공공병원을 방치해왔던 정부가 위기상황을 맞아 또 다시 공공병원을 찾는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정부의 비상진료대책 발표 이후 성명을 내고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믿을 건 공공병원 뿐”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그간 공공병원을 무책임하게 방치해 와 지금의 공공병원은 비상진료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는 코로나19에 헌신하느라 경영난을 겪는 공공병원 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하려다가 수십명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장기간 단식에 나서고 나서야 생색내기용으로 겨우 3개월치 적자분만을 복구했을 뿐”이라며 “지금 공공병원을 순회하며 부탁과 격려를 남발하는 정부 행태가 그야말로 후안무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가 후안무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공공병원을 확충‧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에선 작금의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시민사회에선 작금의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진=DB)

지난 16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민주노총, 참여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주요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공공의료 시민 행진’을 개최하고 정부와 의사들의 대립 속 사라진 시민 건강권을 지적,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인의협 우석균 정책자문위원장은 “정부안은 의료취약지·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숫자만 늘리면 시장의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의사들이 알아서 필수의료·지역의료로 갈 것이라는 시장방임 증원 정책은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참여연대 이지현 사무처장은 “정부는 민간중심 의료공급 체계 내버려두면서 시장경쟁만 더 부추기고, 의사수만 늘리면 필수‧지역의료 위기가 해결된다고 호도해선 안된다”며 “의대 정원 확대는 공공의료 확대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새 이미 일선 공공병원의 어려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 책임 필수의료를 총괄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19일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전공의 파업 여파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의료원은 “코로나19 대응 전담 공공병으로 지정돼 일반 병동을 비우며 악화됐던 경영수지 회복이 지연되면서 누적 적자폭이 커졌고, 최근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경영악화가 심화됐다”며 비상경영체제 돌입 이유를 밝혔다.

일단 정부는 이번 비상진료대책 관련 예비비로 1285억원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전공의 이탈로 인한 공백 완화를 위해 진료를 연장하거나 주말‧휴일 진료를 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에는 예비비 393억원을 신속 지원한단 방침이다.

다만 예비비는 의료위기 대응 심각 단계에서 비상대응체계의 일환으로 지원하는 것이므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면 없어지는 재원이 된다. 이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써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하는 실효성 있는 공공의료 강화 방안이 나올지는 좀 더 지켜 봐야 할 전망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확정했다. 예산안 편성지침은 내년 재정운용 기조와 투자 중점, 재정 혁신 방향 등을 담은 원칙이다.

이번 지침에서 정부는 재정투자 중점 항목에 ‘필수의료분야 육성 및 지역 거점병원의 공공성 확대’를 명시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지역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투자 내용도 재정계획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반적으로 의료개혁 4대 과제의 주요 내용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이 예산에 담길 것”이라며 “지역의료 강화 내용에는 거점병원이나 2차급 중추병원 역할을 하는 병원들에 대한 시설, 기타 여러가지 재정 지원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 부분 안에 현재 공공의료기관도 투자 대상”이라고 말했다.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기자(dlwogur93@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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