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차승진
사진 차승진

도배하는 날

- 차 승 진 -


오래된 살림살이를 들어낸다
방마다 던져 놓은 짐더미를 내다 버리는 일
하루에 잠깐 왔다가는 바람의 빗질에도
갚아야 할 빚더미처럼 쌓여 있는 쓸모를 잃은 물건들
쓸쓸한 삶의 이력서가 낱낱이 쌓인 방
버려야 하는 책들과 해결되지 않는
나쁜 습관들이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있다
손에 잡힌 짐들을 빈 박스에 구겨 넣고
수북이 쌓인 폐품 더미에 욕망의 거푸집을 부수고 있다
문득 옷을 벗다가 옷장에 걸려있는 낯익은 옷가지를 보듯
살아온 날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사진 속 가족들의 풍경​
마구잡이로 내다 버린 버리지 말아야 할
아내가 아끼는 소중한 자격증을 쓰레기 더미에 버렸다 ​
산더미처럼 쌓인 폐품 더미를 들추고 들추어도 보이지 않는
소풍날 보물 찾기처럼 살면서 해준 것도 없는, 내가
아내의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겨울날 언 손을 호호 불면서
지나간 회한을 들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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