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밭들 5
밭둑에 서 있는 살구나무
매화 같은 꽃을 수만 송이 피워주는 쭈글쭈글한 자궁이다
고집 세고 강건한 할머니, 후덕한 마음으로
해마다 흐드러지게 피워주는 꽃에 온 동네 훤하다
탱글탱글 영그는 푸른 살구 노랗게 익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한 번도 흔들어 본 적 없는 살구나무
땔나무 장사로 장만한 텃밭 지키며
지나가는 사람들 반갑게 불러 찬치 벌리는 할머니다
봄에는 눈을, 여름에는 입을 즐겁게 해주는
살구씨 속에 든 달콤한 하이얀 속살 많이 먹었다
그리하여 기침 천식 기관지염 인후염을 모르고 사는
내 입속에서는 늘 달콤한 살구 맛이 난다
그러기에 그 향과 맛을 잊을 수 없는 나는
살구가 살구씨를 품고 있는 그 껍질 밖에서 살아
늙은 살구나무의 산통이 들어 있는 살구씨로 만든 염주 알
쥘 때마다 손바닥에 새겨지는 촉감,
아― 아득한 그 그리움
안원찬
tns.2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