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오 거리를 걷는다. 누가 맞추는 건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발걸음을 맞추듯 나란히 걷는다. 유진엄마 백과 구두를 살펴본다. 사주겠다고 하면 혹시 싫다고 할까봐 잠시 망설여진다. 몇 개의 명품 숍을 지나친다. 유진엄마는 자신의 발만 보며 걷는다. 그녀가 내 발걸음에 맞추는 거 같다.

“저 가디건 색이 예쁘네, 당신한테 잘 어울 릴 거 같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앞으로 걸어간다. 나도 서둘러 다시 보폭을 맞춰 걷는다. 그렇게 다시 몇 개의 명품 숍을 지난다. 난 카페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유진엄마가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 방향으로 걷는다. 우린 카페에 앉는다. 나는 묻지도 않고 커피 두 잔을 시킨다. 그리고 커피 잔만 뚫어지게 보며 마신다.

“미안해.”

용기 내서 말해본다. 반응이 없다.

“정말 미안해.”

여전히 반응이 없다.

“지현이 누나.”

순간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나를 힐끗 올려본다. 눈빛이 빨갛다. 다시 눈길을 내리고 커피를 마신다.

“용서해줘,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유진엄마가 천천히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선다. 나도 따라 일어난다. 그녀가 앞서서 걷는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걷는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우린 걷는다.

춥다.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 차가 있는 호텔과 점점 멀어진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무작정 걷는 지 묻고 싶어진다.

예전에 아빠가 적반하장으로 엄마에게 화를 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정말 용서 받고 싶은데 용서해주지 않아서 그리고 정말 미안해서 화를 냈던 거다, 아빠는. 나도 화를 내볼까 잠시 생각해본다. 아니다. 난 아빠가 아니다.

“다리 아프지 않아? 호텔로 돌아가야 할 거 같은데. 누나랑 만나려면 슬슬 움직여야지.”

유진엄마가 지나가던 택시를 세운다. 택시가 선다. 나는 빠르게 다가가 택시 손잡이를 잡는다. 그녀가 멈칫 선다. 문을 열어준다.

호텔에 도착해 차를 찾아 파리바게트로 향한다. 파리바게트까지 오면서 조심스레 숨을 쉰다. 그녀가 내 존재를 느끼는 게 죄스럽다. 유진엄마 숨소리도 못 들은 듯하다. 누나가 보인다. 눈물이 날 듯 반갑다. 누나가 차 뒷좌석으로 탄다.

“안녕, 우리 동생들.”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좋았겠네.”

“응, 많이 변했더라. 지현아 너도 알지 왜, 내 대학동기 수혁이.”

“응.”

“나 좋다고 따라다녔지.”

“누나를?”

“그래, 나 제법 인기 있었어.”

“에이!”

“지현이가 알아. 나 좋다고 하는 놈 많았어, 그치, 지현아?”

“응.”

누나의 즐거운 추억담이 또 다시 처절하게 차안을 채워나간다. 누나의 웃음소리와 함께.

한인 타운이 한산하다.

“코로나 땜에 한국인들 외출이 많이 줄었대.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공격당할까봐 해 떨어지면 집 밖을 안 나온대.”

“그래서 이렇게 한산하구나.”

누나의 힘겨운 노력으로 억지스레 즐거운 저녁을 먹고 서둘러 산타바바라로 달린다.

누나는 유진엄마를 앞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잔다. 내 옆에 앉은 유진엄마도 눈을 감고 있다.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나는 달린다. 덤프트럭이 내 차를 추월하며 옆을 지난다. 내 차가 휘청 흔들린다. 옆자리에 앉은 유진엄마가 움찔하며 두 손을 꼭 쥔다. 110마일이다,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는다. 유진엄마의 손이 편안해진다. 여전히 눈은 감고 있다. 누나는 고양이 소리로 코를 골며 잔다.

누나와 유진엄마가 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남는다.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린다. 누나가 방에서 나온다.

“나도 한 잔 줘.”

우린 창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는다. 창밖의 달빛이 밝다. 아마도 보름인 거 같다. 서로 요란하게 소리내며 커피를 마신다.

“엄마한테 혼나겠다.”

누나의 한마디에 우리는 동시에 웃는다.

“희.정.아! 소리 내지 말기.”

누나가 엄마의 목소리와 톤을 흉내 낸다.

“엄만 언제 오지?”

“오늘 어땠어?”

“뭘?”

“유진엄마랑 말해봤어?”

“말을 안 해.”

“용서해달라고 했어?”

“응.”

“그런데?”

“말을 안 해.”

“뭐라구 했는데?‘

“용서해달라구, 미안하다구”

누나가 고개를 돌려 말없이 나를 본다. 뭔가 잘못 된 거다. 누나는 맘에 안 들면 말없이 보기만 한다. 나는 커피 잔에 얼굴을 더 박는다.

할 말이 없다. 너무 미안해서. 죽고 싶도록 미안해서.


작가 소개

황미영

1997년 추리극본

“사랑의 저 편에 선 천사” 일간스포츠 신춘 대중 문학상 수상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한국 추리소설가협회 회원

저서 : 차가운 복수. 브로드웨이의 비명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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