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잇기]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가 내려온다!
[박희진의 문화잇기]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가 내려온다!
  • 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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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새해를 맞이해야하는 예정된 글을 쓰는 이 순간은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새날이 밝았다.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 시대를 여는 마음가짐이 온전히 글에 담기길 바라는 간절함이 크다.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호랑이 기백으로 맞이한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호랑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 그림 속에는 두 개의 낙관이 찍혀있다. 낙관 하나는 호랑이 그림을 그린 김홍도의 것이지만, 그림 속 소나무는 누가 그렸는가에 대해서 아직도 전문가들의 다양한 이견이 있는 작품이다. 그림은 김홍도가 세화(歲畫)가 아닌 감상용으로 그린 그림으로, 꼿꼿이 처든 꼬리와 탄탄한 몸집에 형형한 날카로운 눈빛을 지난 호랑이의 세밀화를 볼 수 있다. 범(虎)의 생김새가 용맹스럽고 몸통의 비율이 무게감 있어 그림 전체 구성이 안정적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자,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우리네 문화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호랑이가 존재한다. 조선후기 세시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새해 첫날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는 세화(歲畫), 단오에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드는 애호(艾虎) 등으로 모두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풍속이 기록된 바 있다. 지금으로보면 호랑이 그림을 부적으로 쓴 셈이다.

어린 아이가 태아나서 세 살이 되면 호사 겸 방한용으로 모자를 씌웠는데, 부모는 어린 자식의 모자에 호랑이 상을 수놓거나 비취 장식을 달았다. 성인이 된 남자들은 머리 장식인 풍잠(風簪)에도 호랑이가 장식되어 벽사용 내지는 무관용으로 썼고, 성인이 된 여자들은 노리게 장식에 호랑이 발톱이나 이빨 자체를 세공하거나 자수로 장식해 패용하여 잡귀를 쫓았다.

▲김홍도, 송하맹호도, 90.4 x 43.8 cm, 호암미술관 (사진=박희진 제공)
▲김홍도, 송하맹호도, 90.4 x 43.8 cm, 호암미술관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삼국유사>1권 고조선조에 나오는 단군의 건국신화에서 처음 호랑이의 기록이 유래되었다. 용맹함과 두려움의 존재인 호랑이를 표현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선사시대 바위그림이 현재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남아있다. 다만, 바위그림에는 9점의 호랑이 그림이 남아 있는데, 9점의 호랑이 그림은 그만큼 호랑이가 이 땅에 많았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림 가운데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의 순간을 가까이에서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발견됨에 따라 호랑이는 수렵의 대상이기 보다는 세밀히 관찰되었던 동물이자 이야기로 전해지는 효도와 보은, 옹호의 영물로 다정하고 친근한 동물로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함께 한다.

일제감점기, 일본은 식민지 백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수 구제 정책을 내세워,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 이후 남한에선 한반도 호랑이의 명맥이 끊겼지만 각양각색의 호랑이의 모습들로 우리민족의 뿌리 깊은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호랑이와 함께 해온 우리 민족의 역사는 깊다. 기록된 자료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아서 한국적 예술성과 힘찬 생명력을 지닌 일상생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범 내려온다!’는 말이 있듯 위태위태한 코로나19 시국에 신을 대신하는 신성한 영물인 호랑이 기백으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임인년 검은 호랑이’가 내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