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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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정부에 따르면 이번 참석은 나토 회원국들과의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 연대를 강화하고, 한국의 포괄적 안보 기반을 구축하고, 사이버, 기후 변화 등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북핵 관련 한국의 입장에 대해 참석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한편 국내 매체들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초청을 받았다’ ‘윤 대통령의 다자 외교무대 데뷔’ ‘한미일 정상회담 가능성’ ‘한일 정상회담 추진’ 등의 제목으로 보도할 뿐이고 이번 참석으로 한국의 외교정책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토는 2차 대전 이후 냉전 상황에서 소련의 위협을 느낀 북미와 유럽 국가 간 군사 동맹으로서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소련이 1991년 무너졌음에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가 공산주의를 포기했으나 미국과 서구는 러시아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온 바 나토의 경계 대상은 이념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인 것 같다. 나토는 나아가 지속적으로 구소련권 동유럽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러시아의 반발을 초래했으며, 이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가장 큰 요인이다.

윤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석에 대한 의미 부여와 관련해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한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를 갖는가? OECD 가입, G20 포함 및 G7 초청 등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가 확인된다는 의미가 있으나 나토는 기본적으로 러시아에 적대하는 군사동맹체로서 한국의 국가 위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둘째, 한미일 정상회담은 우리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이 더 원하는 것일 것이다. 셋째, 한일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만날 계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재 강제징용 배상 등 양국 간 첨예한 현안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양국 정상이 회의장에서 오다가다 마주칠 가능성을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듣기 민망하다. 넷째, 포괄적 안보 기반 구축과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럽국가들이 한국의 안보에 무슨 이바지를 한다는 것이며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대처는 별도의 국제기구들이 있는데 나토 회의에 참석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다섯째, 북핵 관련 한국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겠다고 하는데 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핵 문제 논의는 러시아 및 중국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달려 있다. 나토 회원국들은 항상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무엇을 ‘확보’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나토가 한국을 초청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 말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우회적으로도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면 나토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에서 한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군사적인 지원에 대한 청구서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나토가 원하는 수준의 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면 부담만 떠안게 될 것인데 참석 여부를 좀 더 신중히 검토했어야 하지 않나?

나토정상회의 참석이 새 정부의 반(反)러시아·반중국 기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에 대해 안보실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전략 개념은 반중·반러 정책으로의 대전환으로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는데, 이미 블링컨 장관이 이번에 채택될 전략 개념에 기존 반러시아에 더하여 중국 견제가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안보실 관계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또한, 주 나토 대표부 설치를 결정했다는데 아태 지역에서 나토의 파트너국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중 한국을 제외한 3개국은 대표부를 두고 있다고 하나 나토의 30개 회원국 중에도 상주대표부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 굳이 별도의 대표부 설치가 필요한 것인지 심도 있는 검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석은 당연히 반러시아적이고 중국을 자극하는 행보로 비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전혀 처지가 다른 한국이 줏대 없이 미국 등 서방이 부추긴다고 해서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라는 경제적 부담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안보적 부담만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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