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래슨 국유림에서 대형 산불 ‘딕시’를 진화하고 있는 소방관들. (출처: 뉴시스)
지난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래슨 국유림에서 대형 산불 ‘딕시’를 진화하고 있는 소방관들. (출처: 뉴시스)

아프리카~러시아까지 신음

개도국 전례 없는 재난에 피해

북미·유럽 등 부국도 타격 커

올 여름 기후행동 필요성 최대

[천지일보=이솜 기자] ‘천 년 만의 홍수, 천 년 만의 폭우, 천 년 만의 폭염.’

올 여름 중국, 독일, 미국에서 각각 발생한 재난에 대한 기상청과 과학자의 평가다.

지난 주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서는 폭우로 인한 홍수가 지하철에 범람하면서 통근자들은 급류를 피해 필사적으로 객차 내 난간을 붙잡았다. 객차의 산소가 부족해서, 물에 잠겨서 14명이 숨졌다.

지구 반대편에선 미국 오리건주 그레셤에서 61세의 수공예 우쿨렐레 제조업자가 그의 평생 살던 집에서 폭염으로 서서히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한 과학자가 “지구에서 관측된 가장 이례적인 더위”라고 불렀던 이번 폭염으로 사망한 최소 800명의 피해자 중 하나였다.

최근 유럽, 나이지리아, 우간다, 인도 등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수백명이 사망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산불과 살인적인 더위는 캐나다의 한 마을을 말살시켰다. 마다가스카르는 수십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백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기아에 직면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수만 제곱킬로미터의 숲이 불타고 있어 얼어붙은 땅에 저장된 탄소가 방출될 위기에 처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3일 패트리샤 에스피노사 유엔기후변화회의 사무총장은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및 환경장관회의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숫자들이 더 있겠는가”라며 “홍수와 산불, 가뭄, 허리케인과 이 밖의 치명적인 사건에 대해 통계적으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숫자와 통계는 중요하지만 지금 세계가 요구하는 것은 기후 행동”이라고 말했다.

◆“기후 재난은 인재… 예상한 결과”

과학자들은 세계가 생태계를 보호하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올해의 비참한 여름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대다수 나라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1988년 6월 온실효과에 대한 경고가 나오자 4년 후 세계 각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설립했고 “기후 시스템에 대한 위험한 개입을 방지하는 수준으로 탄소 농도를 안정시키자”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수십년 동안 사람들은 100년 전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해왔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경고했던 많은 재앙이 벌어졌다.

몇 번이고 지역사회는 기상재해의 전례 없는 공격에 허를 찔렸다.

올해는 특히 가장 부유한 나라들의 취약함이 드러났다.

독일의 많은 주민들은 다가오는 홍수에 대한 비상경보를 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해 200명 이상이 숨졌다.

며칠 전 런던에서는 3시간 동안 51㎜의 비가 내리며 지하철과 거리, 기차역 등 교통이 마비되고 버스 승객들은 보트를 타고 구조됐다. 한국에서는 장마철 시간당 50㎜의 비가 종종 내리지만 런던과 같은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의 많은 부분이 범람원 위에 지어졌음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배수 시설을 유지하고 있던 런던의 안일함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남부지역 국가에서도 올 여름 산불이 전례가 없는 수준으로 확산하며 수많은 이재민을 양산했다.

개발도상국들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지구 온난화의 최악의 영향은 대응할 능력이 가장 부족한 최빈국을 강타했다. 연구에 따르면 1970년 이후 기상 및 물 관련 재해로 인한 사망자 중 3분의 2 이상이 ‘최저개발국’에서 발생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촌 중 하나인 인도 뭄바이 다라비에 사는 산딥 만달(27)은 이달 초 순식간에 이재민이 됐다. 만달은 홍수를 피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옷, 베개, 담요 등 자신의 소유물들이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만달은 뭄바이 장마철에 종종 홍수가 나지만 올해는 그가 경험한 최악의 해라고 전했다. 이번 달 인도에서는 7월 평균보다 40% 많은 1220㎜ 비가 내렸다. 뭄바이에서는 최근 내린 폭우와 홍수, 산사태로 11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옥스퍼드대 기후과학자 프레티 오토는 WP에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예상했던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비완디=AP/뉴시스] 22일(현지시간)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 외곽 비완디에서 인도 국가재난대응군(NDRF) 구조대가 홍수로 고립된 주민들을 보트에 태워 구조하고 있다.
[비완디=AP/뉴시스] 22일(현지시간)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 외곽 비완디에서 인도 국가재난대응군(NDRF) 구조대가 홍수로 고립된 주민들을 보트에 태워 구조하고 있다.

◆부국들 타격에 기후행동 희망↑

부유하고 강력한 선진국들까지 피해를 심하게 입자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은 이 순간이 기후변화의 진로를 바꿀 수 있고 기후 재난의 영향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프리카 기후 에너지 연구소 파워시프트아프리카의 책임자 모하메드 아도우는 “최근의 재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가장 큰 역사적 기여자들이 이제 해결책을 모색할 동기를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의 누적 탄소 배출량은 인간이 만든 탄소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평균적인 미국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인도의 약 10배에 달한다.

부(富)로 탄소 배출량을 나눈다면 그 격차는 더욱 극명해진다.

유엔보고서는 세계 인구의 가장 부유한 1%가 가장 가난한 50%보다 2배 이상의 오염을 발생시킨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연간 소득이 약 1억 2500만원이 넘는 사람들은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탄소 발자국을 30배 줄여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각국은 올해 11월에 열리는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에 대비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야심찬 기후 목표를 공약할 것이다.

숲이 불타고 도시가 물에 잠기고 농작물이 시들고 가축과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올 여름 그 어느 때보다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도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아도우는 “시간이 너무 없다”며 “올 여름 화재와 홍수로 조치가 필요한 나라들의 변화가 앞당겨 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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