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AP/뉴시스]유엔이 제공한 사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사전 녹화한 영상을 통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라고 부르며
[뉴욕=AP/뉴시스]유엔이 제공한 사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사전 녹화한 영상을 통해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라고 부르며 "이 전염병을 세계에 퍼뜨린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며 중국을 비난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전 세계가 유례없는 재난에 허덕이는 가운데 협력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열린 제75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주요국 정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가르고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사상 최초의 원격회의 방식으로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을 위해 193개 회원국 중 유엔대표부 대사 1명씩만 총회장 좌석에 앉아 미리 녹화한 자국 정상들의 영상 메시지를 소개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일반토의를 막을 열면서 각국 정상들에게 “이 시대의 첨예한 문제인 코로나19와 이 바이러스가 촉발한 경제적 재앙, 그리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냉전의 위험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세계적 단결을 요구하고 무엇보다 전염병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바이러스를 억제하지 못하고 종종 상황을 악화시키는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과 이란은 미국과 충돌했으며, 각국 지도자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의 대처에 좌절과 분노를 나타냈다. 또 특정 의혹이나 비난을 받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를 해명하기에 바빴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코로나19 사망자를 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대유행 사태에 대처하는 데 경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브라질 언론이 외출 제한 명령을 장려하고 공공보건을 경제보다 중요시하는 등 패닉 상황을 확산시켰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경시하고 경제를 폐쇄하면 사람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 우한에서 발원해 20만명이 넘는 미국인과 전 세계 10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 중국의 책임을 추궁해달라고 유엔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장준 중국 유엔 대사는 총회장에 나와 시 주석의 메시지를 소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 장준 대사는 “지금 이 순간 세계는 대립이 아닌 더 많은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정치 바이러스의 확산이 아닌 상호 신뢰를 높여야 한다.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연설에서 “주요국들은 주요국처럼 행동해야 한다”며 “코로나19는 경제의 세계화가 논쟁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자 추세임을 일깨워준다. 경제의 세계화 앞에서 타조처럼 모래밭에 머리를 박거나 돈키호테의 창으로 맞서 싸우려 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세상은 결코 고립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했다. 미국과의 마찰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유권으로도 많은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는 시 주석은 “우리는 패권과, 팽창, 세력을 결코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어느 나라와도 냉전이나 뜨거운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다자간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대유행이 충격이 돼야한다며 미국과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 저항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유엔이 바이러스 퇴치에 실패했다고도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에 반정부 인사인 알렉세이 나바니에게 일어난 일을 밝히라고 경고하고 위구르 무슬림이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중국 신장 지역으로 유엔 사절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과의 긴장 속 최악의 코로나19 위기를 맞고 있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최근 이뤄진 미국의 제재 조치를 강하게 비난하며 이란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 경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다루는 영상은 우리에게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며 “무릎으로 목을 조른 모습은 독립국의 목을 짓누르는 오만함으로 비쳤다”라고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자국 등에 대한 제재의 종식을 촉구했다. 또 대유행 사태에 대한 다자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아프리카 연합을 대표해 개발도상국들이 이 대륙의 경제와 발전을 후퇴시키고 있는 코로나19와 싸우는 데 있어서 부유한 국가들의 도움이 충분히 관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라마포사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는 처음으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언급한 지도자다. 그는 “제도적 인종차별의 고뇌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국가로서, 남아공은 기업이나 주나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인종차별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요구하는 데 지지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나이지리아의 무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코로나19 백신의 공급을 요구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것 이상의 생각을 할 것을 전 세계에 요구했다. 그는 지도자들에게 “건강 위기를 다른 재앙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변곡점으로 이용하라”며 “세계가 사회적 불공정, 환경 파괴, 차별에 대한 백신을 꿈꾸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또한 코로나19 백신을 모든 국가가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세계적인 공공재로 취급할 것을 촉구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각국이 결의안을 준수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도록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확대하는 등 세계 기구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 엘시시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테러 지원국들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며 이웃 리비아에 전투기를 파견한 국가들을 비난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의 마약 단속과 관련한 인권 문제를 일축하고 코로나19와 싸우는 유엔의 역할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또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서는 지정학적인 긴장들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자연 환경을 보호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보호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유엔동물보호협회에 제출할 헌장의 초안을 작성했다”며 “이 헌장은 생태계와 모든 종의 동식물에게 생존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반토의 첫날의 연사는 모두 남자였다. 이 일정대로라면 첫 여성 지도자의 연설은 23일 오후 주자나 차푸토바 슬로바키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한다. 또 이날 자니네 아녜스 볼리비아 임시 대통령과 시모네타 소마루가 스위스 대통령이 여성 지도자로 연설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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