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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신치료 제1막

  • 입력 2020.02.18 10:11
  • 수정 2020.04.13 10:23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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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융의 분석심리학처럼 불교정신치료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그 여정을 아는 것이 불교정신치료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 같아 간단히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작은 1985년입니다. 그해에 저는 첫 번째 스승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연구실에서 처음 뵈었는데, 선생님은 오십대 초반이었고 저는 서른 살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저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시기에 정신과 전공의 2년 차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는 거에요.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정신의학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 아니겠느냐. 내가 생각하기론 불교의 괴로움을 없애는 시스템을 용어만 조금 바꾸면 훌륭한 정신의학 시스템이 될 것이다.” 저는 ‘이분 대단한 것 같다. 이분에게 좀 배워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서 선생님이 운영하는 공부 모임에 그해 11월부터 참여해 불교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누구냐면, 바로 고익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전남대학교 의대에 다니던 중 심장에 물이 차는 병을 얻었습니다. 심장에 물이 차니까 심장이 충분히 뛰지 못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온몸에 부족이 생기고, 걸어 다닐 수도 없고, 그냥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여 몇 년을 병원에서 보낸 후 선생님 어머니 소유의 절에서 요양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액자에 적혀 있는 반야심경 구절 가운데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費舌身意)에 딱 꽂힌 거예요. 나는 눈이 있는데 부처님은 왜 눈이 없다고 했을까를 깊이 생각하셨대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한 3년 하다가 ‘아 부처님이 눈이 없다고 한 이유가 이렇구나!’ 하고 나를 깨쳤다고 합니다.

선생님 공부 모임에 든 그해, 그러니까 1985년 12월에 저한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된 것이죠. 선생님은 그것을 ‘업설(業說)’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선생님은 업설에 바탕을 두고 말씀했습니다. 그 설명을 듣는데 눈이 확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교는 진리구나. 이걸 내가 평생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해에 저는 레지던트 2년 차여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의학계의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요. 거기에 더해 그해 결혼도 해서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익진 선생님께 업설을 배우고 나서 그 이치를 제 삶에 적용한 다음부터는 지내기가 무척 수월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이 이치가 정신적 문제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여기서 불교정신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를 정신치료에 이용하려고 생각했어요. 정신치료를 그대로 두고 그 속에 업설의 원리를 조금 넣은 거죠. 실제로 군의관 시절에 그렇게 해서 써보니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고익진 선생님이 가르친 불교는 좀 특별했습니다. 해석부터 기족불교하고는 달랐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그 가르침의 내용이 어디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에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빠알리어를 배워서 니까야를 공부해야겠다고 말이지요. 이 결심이 제가 불교정신치료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익진 선생님 말고도 제게 큰 영향을 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이동식 선생님입니다. 1984년에 서강대학교에서 정신치료자와 수도자의 만남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동식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 세미나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불교와 정신치료가 연결되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동식 선생님께는 1988년 11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4년 2개월 동안 분석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겠더군요. 그전에는 정신과 전문의가 되어 진단도 내리고 약을 써서 치료도 했지만 왜 병이 나는지를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동식 선생님께 분석을 받고 나서는 왜 정신적 문제가 생기는지 제 나름대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치료자가 되려면 누구나 세 가지 과정을 밟습니다.

첫째, 자기 교육분석을 받습니다. 이 교육분석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이동식 선생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저보고 “자네 문제가 뭐야?” 했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교육분석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는데, 바로 치료 과정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가 어떤 체험을 하는지 직접 알게 되는 것이죠. 이 체험을 바탕으로, 후일 본인이 누군가를 치료할 때 상대가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교육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입니다. 남이 자기를 보듯이 자신을 그렇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잘 못 봅니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를 봅니다. 우리가 남을 볼 때 빤히 보이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렇듯 남도 우리를 볼 때 잘 보이는 게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죠. 교육분석 과정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계속 받거든요. 그 질문을 받다 보면 자기가 자기를 보게끔 됩니다.

둘째, 사례지도(Supervision)를 받습니다. 자기가 치료한 사례를 녹음이나 녹취를 해서 경험 많은 치료자에게 들고 가서 지도를 받는 겁니다. 여기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치료 장면에서 자기가 해결하지 못한 자기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걸 지도받는 거지요. 다음으로, 경험 많은 치료자의 풍부한 경험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례지도는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그룹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이론 세미나에 참여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이론이란 원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론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실제만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가까운 사람 몇몇과만 교류하려 했다면 그냥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 심지어 자기와 다른 시대의 사람에게 자기 견해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체계를 세워 글을 쓴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걸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이론 세미나를 할 땐 이론 속에 있는 경험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경험을 배워야 해요. 선배 치료자의 경험을 배워야 합니다.

고익진 선생님이 1988년도에 돌아가셨는데요, 그 후 12년 정도, 그러니까 2000년 즈음까지 저는 교육분석, 사례지도, 이론 세미나를 기본으로 하고, 제가 치료한 사례를 발표도 하면서 정신치료 쪽에서 여러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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