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역대급 개악인 이유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사관계 전환이 절박한 이 시기에 직접 고용관계 중심의 기업별 노사관계 질서를 고착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 개정안 중 ‘비종사자 조합원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 제한’ 조항을 보자. 조문 구조상 비종사자의 노동조합 활동이 아닌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을 우선 보호법익으로 명시하고 있다. 행정기관과 법원의 법해석과 적용에서도 사업운영 효율성이 최우선 판단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비종사자라는 개념은 해고자와 산별노조 조합원만 조준하는 것은 아니다. 원청 기준에서는 특수고용·간접고용 형태의 조합원들도 비종사자다. 특수고용·간접고용 형태의 조합원들은 원청과 노사합의를 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사실상 원청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을 따르면서 원청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조합활동을 해야 한다. 가능하다고 보는가.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3년으로 연장’하는 조항은 노동조합이 교섭과 파업할 권리를 장기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노동조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될 경우 소수노조는 4년 이상 교섭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사업장 직장점거 제한’은 어떤가. 생산 및 주요업무 시설에 대해서 기존에 판례상 인정돼 왔던 부분적·병존적 점거마저 전면금지하겠다고 한다. 사용자들은 주요 업무시설에서는 일부 점거도 안 된다고 하면서 생산라인, 병원 로비, 마트 등에서 평화롭게 이뤄지던 피케팅과 대체인력 감시를 위한 현장순회 활동을 제한할 것이다. 대체인력 투입은 더욱 용이해지고 파업권 행사의 효과는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정부는 사용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약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하면서, 국제기준에 맞게 노사관계를 정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보장과 기업별 교섭체제 극복 과제는 회피한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사실상 기업별 노사관계를 고착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평가가 과도한 것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5월 고용노동부 장관 등에게 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기본권 보호를 위한 권고 및 의견표명’과 2019년 10월 노동부 장관에게 한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보라. 노조법 2조를 개정해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도 결사의 자유 원칙 적용 대상을 정하는 기준은 고용관계에 있지 않고,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관련해 한국 정부에 거듭 적절한 법·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파업권은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노사분규에만 한정돼서는 안 되고, 노동조합은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을 비판하고자 하는 경우 항의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조합원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사회적 문제에 관한 불만을 더욱 넓은 맥락에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국제기준이 이런데, 한국에서는 노조법이 개정되더라도 여전히 이런 파업을 하면 불법이고 처벌을 받는다. 사용자에게 처분권이 있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교섭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고, 그 교섭이 결렬됐을 때만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낡은 노조법은 전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을 넘어선 연대는 추구하기 어렵고,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산업정책·사회복지·기후위기 대응을 직접 요구하는 것도 어렵다.

노동조합이 정부에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고? 더불어민주당의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공약집을 펼쳐 보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헌법상 노동기본권 보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원청의 공동사용자성 인정, 산별교섭 등 초기업별 교섭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등은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며 내세웠던 것들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방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고용관계는 더욱 다면화·중층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조응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할 사회적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노조법과 제도적 규칙은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교섭하고, 파업을 하기 어렵게 하도록 설계돼 있거나 때로는 그러한 행위들을 범죄화해 처벌하면서 불평등한 사회적 질서를 재생산한다. 정부는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하기 어렵게 만들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제하는 노조법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국제기준에 맞게 개정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노조법을 개정하려고 하는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