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times=견재수 기자]현대중공업에서 올해 들어 작업을 하다가 지금까지 4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1명은 특수선 수중함 생산부에서 작업하던 중 어뢰 발사관에 설치된 유압 작동문에 끼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불명 상태다. 이들 중에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다음 날 사고로 숨진 노동자도 있다.
지난 21일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용접 보조일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50)씨가 숨졌다. 용접할 때 쓰는 아르곤 가스에 질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고에 앞서 노동부가 현대중공업에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열흘간 특별근로감독까지 벌였지만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노동계는 특별근로감독이 유명무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요구로 노동부는 23일 현대중공업 내 밀폐구역 전체를 작업 중지하기 위해 감독관 13명을 파견해 노동조합과 함께 안전점검을 벌였다.
노조 한 관계자는 “공장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한 안전점검에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전을 위협 받고 있다”며 “25일 대의원 7시간 파업과 동시에 진행한 노동조합 자체 안전점검은 밀폐구역 전체 작업중지 명령이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게 중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부가 놓치고 간 밀폐구역에 작업중지는 고사하고 환기 팬 소리와 용접 불빛, 새어 나오는 가스가 가득했다”면서 “작업중지 스티커가 안 붙었다는 이유로 버젓이 일을 시켰다”고 회사의 안전불감증과 노동부의 허술한 감독을 꼬집었다.
또 “노동부의 하루짜리 안전점검은 사업장 곳곳에 넘쳐나는 밀폐구역을 다 찾아내기 사실상 부족하다”며 “그렇다고 노동부가 놓치고 간 자리를 손 놓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회사의 안전관리는 더욱 어처구니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안전을 우선해야 할 안전과장이 ‘작업중지 스티커 무시하고 작업해’라면서 작업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누가 봐도 환기 팬 없이는 숨 막힐 밀폐구역을 안전 관리자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노동조합의 작업중지 명령을 무시했다”면서 “생산 관리자도 나서서 안전을 걱정하는데 안전 관리자라는 사람이 안전을 뒷전으로 두는 게 현대중공업 안전현실로 괜히 죽음의 조선소가 되었겠는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현대중공업, 안전을 말할 자격 없다”
앞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지부는 25일 노조소식지를 통해 “뻔뻔한 현대중공업은 안전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가짜 근무에 거짓 보고가 만연해 (특별근로감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1개월 내에 관할 고용노동관서에 산업재해조사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한 것을 산재은폐라 부르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며 “처벌이 약해서인지 많은 사업주들이 법을 우습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8일 아무개 노동자(도장 작업)가 툴박스 문에 손가락이 끼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재해자는 5일 동안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사흘 만에 출근했고 18일까지 일주일 넘게 깁스를 한 채 일은 하지 않고 출근 도장만 찍은 뒤 바로 퇴근했다”며 “이후 지금까지 자재 창고에서 대기하고 있고 근태를 조작해 산재를 은폐하는 일은 오랫동안 이어온 고질적인 적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매주 수요일 수요 안전공지가 뜨는데 경쟁 하듯 각 부서별 무재해 일수와 조선사업부 전체 무재해 일수가 적혀있다”며 “문제는 뻔히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다수의 부서가 허위로 보고 하는데 있다”고 전했다.
이어 “대조립 1·2부, 건조 5부, 의장 5부, 도장 1·2부 등 대표적인 사고 다발 부서에서 길게는 500일 넘게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며 “허위보고서를 작성한 관계자나 그걸 확인 없이 곧이곧대로 믿는 최고경영진이나 도긴개긴이다”고 산업재해 은폐 실태를 폭로했다.
<JTBC 뉴스룸>은 25일 현대중공업이 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직전에 엔진 기계를 다루는 작업장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내보내 감독관의 눈에 띄지 않게 일부러 작업장을 비웠다고 주장하는 노조의 제보 영상을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노동부는 이 회사에서 올 들어 석 달 새 3명이 숨지자 5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특별감독을 실시했고 바로 다음 날 4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14일 촬영된 해당 영상에는 특별근로감독 직전에 노동자들이 현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그대로 담겼는데 현장에선 제대로 된 감독이 아니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특별근로감독 기간 감독관의 눈에 띄지 않게 일부러 작업장을 비워 작업장 곳곳은 텅 비었고 기계도 멈췄다. 회사는 감독관이 돌아가자 평소대로 노동자들을 작업에 복귀 시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이하 대책위)는 26일 현대중공업에선 올해만 5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고 조선소 다단계 하도급 금지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2월 22일 트러스트 작업 중 추락사망, 3월 17일 바지선에서 바다로 추락하여 익사, 4월 16일 잠수함 어뢰발사구 문짝 끼임 사고 후 사망, 4월 21일 도장공장 빅도어 끼임 사망, 5월 21일 아르곤가스 질식사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대책위는 “잇단 중대재해로 고용노동부는 5월 11일부터 20일까지 (현대중공업에 대해) 특별 안전감독을 진행했으나 중대재해를 예방하지 못했다”며 “(21일 일어난) 파이프 내 아르곤가스 질식사는 2012년 5월에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에서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아무런 안전조치가 없었다. 명백한 사업주 과실로 인한 사망이었으나 이를 바로잡지 못함으로써 판박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는 2월 트러스트 추락사고와 4월 22일 빅도어 끼임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 발생 작업에 대해서만 작업중지를 명령했다”며 “전체 사업장에 동일한 위험이 있어 동일작업에 대한 작업중지를 통해 현장 노동자를 보호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하나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올해 발생한 현대중공업 5건의 중대재해 책임을 물어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를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중대재해를 근절하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법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표이사와 법인에게 산재 사망의 책임을 묻는 것만이 실질적으로 산재 사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분명히 보여준다”며 “더 미루지 말고 21대 국회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 대표 전격 교체
한편 현대중공업은 25일 최근 잇달아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사장 인사 및 조직 개편 등을 단행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은 이날 “잇따른 중대 재해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앞으로 모든 계열사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하수 부사장은 안전사고 발생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으며 이상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이 조선사업대표에 선임됐다고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1974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그 동안 현대중공업은 “안전점검을 벌여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고 안전을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산재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