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 회장과 임원, 총 13인의 삭발식으로 결의 보여
간호계의 오랜 숙원 간호법… 지난 5월 보건복지위원회 통과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는 6개월째 안건 상정조차 하지 않아

[일요서울 | 강윤선 기자] 전국의 간호사 및 간호대 학생들이 21일 여의도 광장에 모였다. 대열마다 흰 깃발을 손에 쥐고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가 했던 약속을 지키라”며 간호법의 신속한 제정 촉구를 외쳤다.

간호법제정총궐기대회 일부 시위대열 모습 [강윤선 기자]
간호법제정총궐기대회 일부 시위대열 모습 [강윤선 기자]

대한간호협회(간협)와 간호법제정추진 범국민운동본부를 포함해 약 1300여 간호 관련 단체가 전국 각지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결집했다.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의 전·현직 간호사와 간호사를 꿈꾸는 간호대학 학생들은 국회의사당 맞은편 도로부터 산업은행에 이르는 약 400미터의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다.

대회사를 준비하는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 [강윤선 기자]
대회사를 준비하는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 [강윤선 기자]

이들은 흰 마스크와 흰 장갑을 낀 채 줄지어 앉아 국회를 향해 피켓을 들었다. 동시에 대선 당시 여야 모두가 공약 사안으로 내걸었던 간호법 제정의 약속을 지키라 입을 모았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간호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면서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특정한 이유도 없이 189일째 간호법 제정을 미루고 있다”며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대한간호협회와 정책협약을 통해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양당 대선공약으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13개의 보건복지의료연대 소속 단체를 향해 “간호법이 보건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독자적인 간호업무를 가능케 하는, 간호사만을 위한 법안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간호법은 우수 간호 인력을 양성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 적정하게 배치하고 처우개선을 통한 장기근속을 유도해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법”이라는 간협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삭발식을 진행 중인 간협의 임원들 [제공=대한간호협회]
삭발식을 진행 중인 간협의 임원들 [제공=대한간호협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료법(2021년 12월30일 개정) 제2조에 의하면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이 때 의료법에 명시된 간호사의 업무는 첫째,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둘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셋째,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 마지막으로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업무보조에 대한 지도다.

간협 주장 사안의 핵심은, 현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관련 규정을 떼어내, 단독법으로써 간호사의 업무 환경 및 체계 등을 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의 주관적인 업무 명령이 아닌 법에 명시된 업무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밝은 모습으로 취재에 응하는 이유진 간호학과 학생 [강윤선 기자]
밝은 모습으로 취재에 응하는 이유진 간호학과 학생 [강윤선 기자]

이유진 수성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은 일요서울에 “어릴 적 어머니가 갑상선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며 “출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초등학생이던 제가 어머니를 보살펴드려야 했는데, 당시 어머니의 담당 간호사로부터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는, 간호사를 꿈꾸게 된 계기를 먼저 전했다.

이어 “입학 전부터 간호법이 없다는 걸 알았고 이로 인해 많은 부당한 대우와 인식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때 의지가 됐던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어 간호학과에 들어왔다”며, 자발적인 참석 의지를 묻는 취재진에게 “오늘 여기까지 온 간호대 학생들은 훗날 간호사가 될 사람들이니 실제로 간호법 제정에 관심이 정말 많다”고 힘주어 답했다.

소속 단체나 대학의 이름이 쓰인 깃발을 들고 있는 시위대열들 [강윤선 기자]
소속 단체나 대학의 이름이 쓰인 깃발을 들고 있는 시위대열들 [강윤선 기자]

김혜진 창신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일부) 언론은 간호사가 더 많은 권익을 얻기 위해서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도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환자가 수술을 받게 되면, 의사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수술을 집도한다. 하지만 간호사는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을 마칠 때까지 돌본다. 간호사에겐 여기까지가 수술의 전(全)과정이다”라며 “우리는 질병이 아니라 환자를 본다.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환자가 낫지 않으면 시간을 들여서라도 당연히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호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가 의사들의 업무까지 맡아 한다. 때문에 의료 문제 발생 시, 의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 간호사가 처벌받기도 한다”며 “간호법 제정 없는 의료 현장에서 결국 마지막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건 환자와 보호자, 즉 국민들이다”라고 덧붙였다.

시위대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강윤선 기자]
시위대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강윤선 기자]

한양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은 의료 분야에서 남자 간호사 인력의 필수성을 느껴 간호학과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그는 “입학 전에는 간호법이라는 게 없는 줄 몰랐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당연히 존재하는 법이니,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이에 덧붙여 “의사가 하는 일과 간호사가 하는 일은 의료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나, 업무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더더욱 독자적인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는 간호사 1명당 돌봐야 할 환자가 3명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당 최대 20명까지도 담당해야 한다”며 “의료인이라면, 마음을 모아 마땅히 변해야 할 것(간호법 제정)을 저지하는 사태가 없길 바란다. 그것이 환자를 우선으로 하는 의료인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신념을 내비쳤다.

간호법제정총궐기대회의 전경 [강윤선 기자]
간호법제정총궐기대회의 전경 [강윤선 기자]

한편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의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오는 27일 ‘10만 간호법 반대 집회’를 국회 앞에서 개최해 간호법 결사 저지의 강력한 뜻을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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