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계 미국의 정치학자 애덤 쉐보르스키는 “서로 죽이지 않도록 하는 체제가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그렇기에 선거를 통해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되고,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될 수 있는 평화적 정권 교체의 반복을 실현하는 민주주의가 군주제나 일당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당위성을 지니게 된다. 

민주주의의 꽃은 대의민주주의 체제다. 국민이 주인이기는 하지만 개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민을 대신할 국회의원들을 뽑는 것이다. 

비록 여러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의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남은 것은 다른 체제보다 작동이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의민주주의의 요체는 정당정치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당정치가 건강해야 한다. 정당이 강한 나라의 정치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의 정국은 항상 불안하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장기집권에만 혈안이 돼 상대 당을 적으로 간주하면서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생결단식 정쟁을 일삼아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쥔 뒤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는 더 퇴보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이른바 ‘여야 4+1 협의체’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조직의 출현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을 배제한 채 바른미래당 당권파 및 비교섭단체 3곳과 결성한 '4+1 협의체'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512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을 강행 처리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들은 결국 지난 해 12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한국당을 무시한 채 강행 처리했다.

전문가들은 ‘여야 4+1 협의체’가 국회법상 문제는 없다면서도 전체 의석 중 3분의1을 차지하는 제1야당을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크게 벗어난 것이라며 아무리 힘들어도 협상과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혀 나가야 하는 건강한 정당정치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무리수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결국 이들의 제1여당 배제의 결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우리 정당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당의 출현이었다.   

개정된 선거법이 2020 총선에서 불리할 것이 확실시되자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처음에는 미래한국당의 창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으나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통합당에 싹쓸이 당할 것이 우려되자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급조했다. 수차례 비례정당 참여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민주당은 “통합당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을 바꿨다.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은 총선이 끝나면 당선자들이 모(母)정당으로 가게 되어 있어 이들 정당은 이름만 남게 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국민의당은 지역구를 완전 포기하고 비례후보만을 내세우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을 태연하게 연출했다. 

한 지역구에서 공천 후보가 수차례 뒤바뀌고,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던 사람이 다른 지역에 전략 공천되고, 모(母)당이 영입한 인사들을 당선 안정권 밖에 배치하는 '난(亂)'을 일으켰다가 당 대표가 교체되기도 했다.  

이 모두가 협상과 대화를 통한 상생의 정치를 외면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퇴행적 정치 행위다. 

지난 3년간 사회 전반에 걸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목도한 우리 국민은 2020 총선 역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거를 치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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