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관점] 생활치료센터 화재 대비 문제점 "자체 초동 대응계획 부실"

박요순 소방관 / 기사승인 : 2021-09-27 10:29:13
  • -
  • +
  • 인쇄
박요순 소방관(경기도소방재난본부 )
박요순 소방관(경기도소방재난본부 )

[매일안전신문] 나는 현직 소방관으로 최근 입소자 수가 1천 명에 가까운 수도권의 어느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소방 훈련을 다녀왔다. 해당 치료센터는 높이가 20층이나 되는 대학교 기숙사 두 동을 빌려 쓰는 대규모 시설이었다.


이번 훈련 경험을 토대로 생활치료센터의 화재 대책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제기하고자 한다.


한 곳의 사례를 들어 전국의 생활치료센터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관계자와 얘기를 나눠보니 다른 생활치료센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다.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불이 나면 119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생활치료센터 자체적인 초동 대응계획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입소자 생활공간에서 불이 나면 입소자가 아닌 생활치료센터 운영인력이 진입하여 옥내소화전 등을 이용해 불을 끄고 입소자의 대피를 유도해야 하는데 이 계획이 부족했다.


생활치료센터는 입소자 생활공간과 운영인력 근무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입소자가 아닌) 외부인은 방역 복장을 완전히 착용하지 않으면 입소자 생활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화재 발생 등의 재난 상황에서는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불이 나면 관리인력이 입소자 공간으로 진입해서 불을 끄고 입소자를 외부로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는 것이다.


사전에 확보한 생활치료센터 쪽의 화재 대응계획을 살펴보니 화재 초기대응은 외주 용역팀에서 맡는다고 되어 있었다. 보통 생활치료센터는 출입 통제, 입소자 식사 조달, 청소 등의 업무를 일괄하여 외주업체에 맡긴다.


그런데 훈련 당일 막상 용역팀장과 면담을 해보니 용역팀에서는 화재 대응 업무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입소자 생활공간으로 진입하여 불을 끄는 등의 초기 대응 활동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입소자들이 1층 로비에 스스로 집결해야만 건물 밖 대피 유도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화재는 초기대응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119소방대가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화재 발생 지점(해당 층)까지 도착하려면 평균 10분 정도가 걸린다. 그동안 소화기나 옥내소화전을 이용한 초동대응이 안되면 화재가 확산되고 인명·재산 피해가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계약 미비로 외주 용역 인력이 화재 초동대응에 나설 수가 없다면 생활치료센터의 운영 인력(생활치료센터에는 보통 각 지자체에서 수십 명의 공무원이 임시 파견되어 있다)이라도 이 임무를 해야 하는데 평상시 이에 대한 임무 지정이 되어 있지 않고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실상 '갇혀있는' 입소자가 있는 상황에서 화재 발생 때의 피해 가능성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 본다. 먼저 외주 용역 계약에 화재 초동대응(입소자 생활공간 진입하여 화재진화 및 대피 유도) 임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계약 (갱신) 이전이라면 일반 운영인력(공무원 등)이 화재 초동대응 활동을 담당해야 한다. 용역 인력이든 파견 공무원이든 24시간 방역 복장을 갖추고 즉시 투입이 가능한 1분 대기조 형식의 화재 대응 인력이 최소 2명씩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방역복을 완전히 갖추어 입는데 적어도 5분 이상은 걸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화재 초동 대응 훈련을 최소 1주에 한 번씩은 실시해야 한다. 이에는 입소자 생활공간에서의 옥내소화전을 이용한 화재진화와 대피 유도 훈련을 포함한다. 이 훈련을 하면 옥내소화전이 정상 작동되고 있는지도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전 훈련 없이 실제 상황에서 재난 대응이 잘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얻길 바라는 것과 같다. 또한 재난 대응이 잘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전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관리자의 임무를 방기하는 행위일 것이다.


재난은 철저한 사전 대비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재난에 대해 설마 하는 안이한 인식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 아쉽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낭비가 아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다.


9월 초를 기준으로 전국에 생활치료센터 89곳이 운영 중이고 입소자는 1만 명이 넘는다. 화재로 인한 혹시 모를 불상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통일된 생활치료센터 화재 대응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박요순 소방관(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저작권자ⓒ 매일안전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요순 소방관 박요순 소방관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