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작은 아이가 다쳐 병원 생활을 했다. 그 때 아이 친구가 심심할 거라며 금붕어 두 마리를 사다 놓고 갔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들렀더니 한 녀석이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유유자적 헤엄칠 때는 잠깐씩 눈길을 두기도 했는데, 뻣뻣하게 굳어 있는 걸 보니 소름이 돋았다.
  퇴원하는 날, 한 마리 남은 금붕어가 문제였다. 생각 끝에 병실에 두고 가자는데 아들 녀석이 친구가 준 선물이라며 끝까지 고집이다. 귀찮기도 했고 또 키울 일이 걱정되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별도리가 없어 결국 아이의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베란다 구석에 녀석을 두었다. 방치라고 하는 게 어쩜 맞을지 모른다. 눈에 잘 뜨이지 않으니 녀석이 있다는 생각조차 잊을 때가 있었다. 어항을 장만해주지 않아 조그만 대야가 제 집이었다.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어서 애초부터 녀석은 관심 밖이었다. 이러다 굶겨 죽이지 않을까. 양심의 가책이 될 때도 있었지만 갈수록 소홀해 가니 나도 참 무정한 사람이다. 내 밥은 꼬박 챙겨 먹으면서 녀석에게 먹이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까먹었다. 한 두 끼 굶은들 어찌 군소리를 할 개제던가. 식구로 대접 받지 못하는 더부살이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눈칫밥 먹는 신세였다.
  그럼에도 잘 버텨 주었다. 일 년 하고도 반년을 꿋꿋하게 말이다. 문득 생각나 대야를 들여다볼라치면 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혹여 먼저 번 녀석처럼 물위에 둥둥 떠 있지는 않을까. 항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정주기가 싫었던 게다. 그런데 지금껏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길 소망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려 험난한 시간들을 인내했던 것 같다.
  녀석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 내 마음을 슬프게 할지라도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무 심했다. 가엾은 생각을 하는 순간 죄책감이 몰려왔다. 과연 식구였대도 이랬을까. 때맞춰 먹이를 주고 신선한 물을 제 때 갈아주었을 터이다.
  어항을 장만했다. 그 속에 쉴 집과 풀숲도 만들어주었다. 처음 새집에 이사 왔을 때의 기분으로 단장을 해주었다. 그만하면 꽤 멋진 집인데 녀석의 움직임이 영 시원찮다. 숨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녀석이 답답해 손사래를 쳤더니 겨우 움직인다. 그것도 잠시 여전히 구석자리에서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 낯설어서일까. 아님 적응이 안 되는 걸까. 그래, 혼자라서 외로운 게다. 가족이 필요했던 거구나.
  큰아이가 떠오른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제 할 일 야무지게 해내는 든든한 딸이지만  다섯 살까지 말없는 아이였다. 시무룩하니 종일 제 방에서 인형만 업고 있었다. 하나뿐이라 금이야 옥이야 했음에도 아이는 갈수록 풀이 죽어갔다. 잘 웃지도 않았다. 새로운 장난감을 사 주어도 며칠 뒤면 구석진 자리에 뒹굴었다. 그런데 유독 인형만큼은 애지중지였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가며 주절주절 하는데, “언니가 혼내줄 게, 언니가 업어줄게.”하며 자신이 언니임을 강조했다. 엄마가 아닌 언니라고.
  그 때부터 큰아이를 살폈다. 심심해하는 것 같아 집 앞 놀이터에도 내보냈다. 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조금 늦게 아이를 데리러 나가 보니 혼자 있었다.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 모래를 파헤쳤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여태 많은 아이들 틈에서 혼자 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다들 남매끼리 자매끼리 형제끼리 놀다 제 집에 쏙쏙 들어간 때문이었다. 울컥 목이 멨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한 것이 아이에게 엄청난 외로움을 줄 줄이야.  
  다음해, 딸아이에게 동생이 생겼다. 드디어 여섯 살에 누나가 된 것이다. 핏덩어리 동생을 보며 놀라기보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라는 말에 가슴이 저미어왔다. 둘째를 두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였던 게 후회되었다.
  두 남매가 언제 봐도 다정스럽다. 적당한 나이차 때문에 위계질서가 서 있어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서로를 잘 챙겨주니 보기가 참 좋다. 큰아이의 은근한 무게와 작은아이의 생기발랄함이 조화를 이뤄 우리 집은 적당히 부산스러워졌다. 그런데 요즘은 적막강산이다. 큰아이는 도시로 유학을 떠났고, 막내마저 학교에서 밤늦게야 돌아오니 내 발소리에 내가 다 놀랄 지경이다.
  나도 은근히 외로웠나 보다. 여섯 마리의 물고기를 넣어 주고는 제 풀에 좋은 일 했다며 흐뭇해하는 걸 보니. 난리가 아니다. 풀죽어 있던 녀석의 움직임이 숫제 종횡무진이다. 정적만 감돌던 집이 북적거리다 못해 들썩이기까지 한다. 어지러울 정도로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인다. 아름다운 몸짓으로 유영하다가 풀숲으로 여기저기 몸을 숨기면 녀석 역시 따라다니며  잘도 찾아낸다. 마치 아이들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이름을 지었다. 맏형이며 토박이인 일붕이와 새로 온 이붕이, 삼붕이,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녀서 촐랑이, 늘 다른 녀석들 꽁무니만 따라 다녀서 꽁무니, 그리고 얌전이와 어질이다.
  비로소 녀석에게 식구가 생겼고 우리 집은 소가족에서 대가족으로 재구성 되었다. 적막하기만 하던 어항 안이 활기차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생기가 돋는다. 외출 중에도 날 기다리는 식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걸음을 서두른다. 신발정리도 하는 둥 마는 둥 현관에서부터 내 눈길은 벌써 녀석들에게 가있다. 낮엔 나밖에 없다 생각했는데 식구가 늘었으니 제법 시끄러울 게다. 저녁준비가 바빠지겠다. 대가족이 먹어야 할 저녁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좋은 거구나, 함께 비비대는 것이.’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