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송 교수.
임무송 교수.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성 정책공약이 줄을 잇고 있다.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부터 병사월급 200만 원까지 각 후보가 쏟아내는 약속의 재정소요액을 합하면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노동정책 분야는 개혁은커녕 기득권 노조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생략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임금체계에 관한 공약이다.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내세우고 있다. 경기도에서 공공부문의 기간제 근로자를 대상으로 계약기간별 고용불안정성에 비례하여 기본급의 5~10%를 보상수당으로 지급하던 것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경기도 비정규직 공정수당 성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야당의 윤석렬 후보는 과도한 연공형 임금체계를 비판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대해선 공정과 상식을 위배하였다며 실태조사를 약속하였다. 윤 후보가 말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실현되려면 직무급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신입 또는 고참 여부와 무관하게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도록 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직무분석과 직무평가를 통해 각 직무의 가치의 서열을 매기고 임금을 결정하는 직무급은 이론적으로는 명쾌하지만 실무적으로 쉽지 않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역할급은 완화된 직무급이라 할 수 있는데, 역할은 일의 가치뿐만 아니라 근속에 따른 경험과 숙련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동양적 위계질서 문화에 친화적인 측면이 있다.

이 후보의 공정수당은 ‘비정규직=저임금·고용불안’이라는 도식을 전제로 하여 고용의 불안정성을 기본급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추가 수당으로 보상한다는 발상이다.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를 제한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이 늘어나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접근방법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제도화하여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경기도에서는 공공부문 기간제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통계청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시, 파견, 비전형 등 비정규직 가운데 기간제의 근로조건이 가장 양호하다. 민간부문에서는 대기업 비정규직보다 중소기업 정규직의 근로조건이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등에 따라 결정되는데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역차별과 고용감소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연공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고 고용 만료 시 수당을 얼마 더 준다고 임금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징적인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세금만 낭비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수당의 문제 인식이나 취지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의도는 좋으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효과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로 바꾸어 얼마나 차별이 있는지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비정규직 남용의 유인을 제거한 뒤에 노동위원회의 차별구제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선 근로자의 노동에 대하여 공정하게 보상하려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임금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다른 근로자와 비교한 결과 차별이 존재하는지, 만일 차별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이때 공정한 보상기준으로 삼아야 할 원칙이 같은 (가치의) 일을 하면 같은 보상을 받도록 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임금체계가 바로 일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직무급제이다.

차별적 격차를 줄이고 남용 유인을 없애는 방법은 직접적인 사용규제보다는 경제적 부담과 유인이 고용에 미치는 부작용도 없고 효과적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사회보험료 할증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등임금제, 정규직 전환 인센티브 등 다양한 정책조합(policy-mix)을 사용할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은 순수한 직무급제가 어렵다면 각 업종이나 기업, 또는 직무군의 특성에 맞추어 연공성을 완화하는 혼합형 임금체계를 사용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노동의 이동이 많은 상황에서 평생고용시대에 마련된 가파른 우상향의 연공형 임금체계는 오히려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고, 혁신을 저해하며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점이다. 조직에서 오래 버티면 매년 자동적으로 임금이 인상될 경우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할까? 직무나 성과와 무관하게 정규직 또는 장기근속자라는 이유로 유능한 비정규직이나 신입 직원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꼰대형 조직에 헌신할 MZ세대 인재는 없다.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채용부터 배치전환, 성과평가와 보상 등 인적자원관리시스템 전반을 개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생산성과 장시간 노동을 혁신하고, 소모적인 통상임금 분쟁 요인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며, 대립과 투쟁의 노사관계를 대화와 참여의 합리적 노사관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직무와 성과를 평가하려면 반드시 노사 간의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고, 이는 실질적이면서도 건강한 경영 참여와 공동결정의 채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 유력후보가 제시하는 임금정책 공약이 임금체계 합리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어렵지만 올바른 길이라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공무원 호봉제를 폐지하고 정부 조직과 인사를 혁신하는 대통령은 훗날 역동적 혁신국가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