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민심 회복을 위해 종부세 완화 카드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 탓에 들끓는 민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보유세(재산세·종부세)와 대출규제 완화 등 부동산정책 전반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확산되는 분위기다.
실제 여권에서는 종부세 기준(공시가 9억원. 시가로는 12억∼13억원) 상향 등 종부세 완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산세 감면 상한선 또한 기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재산세율 인하와 관련한 당정 협의에서 인하 상한선으로 9억원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 세금폭탄 잠재우고 '표심잡기' 나선 여권

종부세 완화 배경에는 '세금 폭탄론'이 깔렸다. 현재 1가구1주택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초과 공동주택은 전국 기준 3.7%인 52만4620호, 서울에선 전체 16.0%인 41만2970호다. 

이 때문에 서울은 종부세 부과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4.7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에서 봤듯 부동산 민심은 이미 야당으로 돌아섰다. 

여론도 동조하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에 의하면 18세 이상 500명에게 종부세 완화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44%는 찬성했고, 38%는 반대했다. 

여기에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집값이 많이 오른 터여서 13년 전 정한 종부세 부과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당도 4.7 재보선 참패 이후 180도 바뀐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내년 치뤄지는 대선은 민주당 입장에서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잇따라 터져 나온다. 

물론 시기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따른다. 기존 부동산 정책의 틀을 바꿔 세금 인상에 분노한 민심을 달래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득표를 늘리겠다는 계산밖에 생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부자 동네 걱정이라며 취지를 폄훼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정부·여당"이라며 "성난 민심의 뜨거운 맛을 보더니 뒤늦게 세제를 개편하겠다고 호들갑"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앞서 배 의원은 지난해 4·15 총선 지역구(서울 송파을) 공약인 1주택 실소유자의 종부세 감면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바 있다.

정의당에서도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집값을 안정시킬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치솟은 집값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냐는 의구심을 품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세금 깎아줄 테니 더 많은 집을 가져도 괜찮다고 부동산 광풍을 조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열린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불확실성을 조속히 걷어낸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제기된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당정 간 협의하는 프로세스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 나가겠다"고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열린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열린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 여당 내 종부세 완화· · ·  첫 시작은 '마포 성남'

현재 여당 내에서 종부세 완화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과 김병욱 의원이 가장 적극적이다. 정 의원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마포, 김 의원은 중산층 주거지인 성남시 분당을 각각 지역구로 두고 있다. 이들 구는 종부세 대상자가 많이 늘면서 선거 판도가 흔들릴 수 있는 지역이다.

정 의원은 1주택자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김 의원은 이미 종부세와 재산세 인하를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다만 당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진성준 의원은 페이스북에 "어째서 고가주택 소유자들의 세금부터 깎아주자는 얘기가 먼저 고개를 드느냐"면서 "선거 패배의 원인 진단과 처방, 정책 우선순위가 완전히 전도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병욱 의원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서울·수도권 위주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라며 "정책 효과가 의도대로 나오지 않을 때 일부 수정하는 것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했다.

김병욱 의원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서울·수도권 위주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라며 " 종부세 완화에 가장 적극적이다. (연합뉴스)
김병욱 의원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서울·수도권 위주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라며 " 종부세 완화에 가장 적극적이다. (연합뉴스)

 

◇ "부동산 정책 기존 틀 흔들려" 우려의 목소리도

당 지도부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19일 출범한 부동산특별위원회는 당내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종부세 개편 방안을 만들 전망이어서 어떤 형태로 종부세를 완화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종부세 인하로 생기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릴 경우 1주택자 기준으로 약 20여만명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역으로 보면 20만명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고, 잠재적 종부세 대상자들에게도 안도감을 줄 수 있겠만, 정부가 내세워온 공정이나 정의와는 거리가 있기에 무주택자나 저가 주택에 사는 서민층에겐 불만스러울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견지한 부동산 정책의 틀이 흔들 수 있다는 점은 간단치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집값 상승에 종부세 영향이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 완화 카드가 부동산세제 정책 변경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공시가 9억원과 12억원(시가로는 15억∼16억원대) 사이 구간의 주택 가격은 자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재 부동산 시장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 견해다. 

참여연대는 "종부세 부과기준 완화는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현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아직 공시가 9억원을 넘는 주택은 극히 일부분인데다 무주택 가구가 40%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종부세의 목적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여당이 부동산 민심을 잘못 짚었다"면서 "오히려 다주택자의 종부세를 강화하는 등 보유세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 세제 완화에 대한 투기 세력의 기대감을 없앤 뒤 공시가 현실화율의 속도 조절이나 1주택자나 무소득 노년층의 세 부담 완화를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다만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최근 몇 년 새 집값 상승과 세율 인상, 공시가 현실화가 맞물리면서 세 부담 증가 속도가 가팔랐던 만큼 일부 완화는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세제나 시장 영향 등을 면밀히 따져보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처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