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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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하죠. 어떤말... 무슨 말 하겠어요."

완전히 불에 타 기둥 몇 개만이 남은 전북 정읍시 천년 고찰 내장사 대웅전을 바라보던 한 승려가 짧게 탄식하며 이같이 읊조렸다.

5일 오후 6시 30분께 내장사 대웅전에서 불이 났다. 불은 순간이었다. 대웅전 전체로 번졌고,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1시간 10여 분만에 큰 불길이 잡혔으나, 대웅전은 몇 개의 기둥만 남긴 채 완전히 타버렸다.

기단 위에 웅장하게 서 있던 대웅전은 완전히 지붕이 무너져 그 자리에 건물이 있었다고만 짐작될 뿐이었다.

기단 주변으로는 까맣게 그을린 목재들과 부서진 기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을 연꽃 문살이나 청색, 적색, 황색 등 화려한 색깔로 칠해졌을 공포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재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내장사로 달려온 승려들과 보살, 처사들은 잔불을 정리 중인 소방관들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취재진이 화재 당시의 모습 등을 질문했지만, 승려가 불을 질렀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인 탓에 대부분 관계자들이 말을 아꼈다.

대표로 입을 연 대우 스님(75)은 "매캐한 냄새가 나서 이상해서 밖으로 나가 보니 연기가 나고 불이 붙어 있었다"며 "절에 있던 승려들이 전부 달려들어 소화전을 동원해 불을 끄려고 했으나 끄지 못했다"고 화재 당시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8년 전 참화에 절을 지켜내지 못해 뼈아픈 아픔을 느꼈는데, 이번 화재로 또 절을 지켜내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 뿐"이라며 "정확한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승려가 불을 질렀다면 정말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웅전 방화 피의자인 승려 A(53)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현행범 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휘발유로 추정되는 인화물질을 사용해 내장산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내장사 승려들에 따르면 불을 지른 승려는 한 달 전부터 절에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승려들과) 내부적 다툼 이후에 불만을 품고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