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의 여유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며칠 전 어느 정치인의 아들이 집행유예 기간 중에 또 다시 범행을 저질러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귀가 조치 후, 다시 경찰서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당당했습니다. 거침없었고,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죗값 달게 받겠다고 말하며 가진 자의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검은색 모자는 깊게 눌러쓰고, 하얀 마스크로는 얼굴을 거의 완전히 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인터넷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유명한 얼굴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차게 걷게 했을까요? 그의 행동은 분명 보통사람들의 것과는 달랐기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에게 무서운 것이 있을까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기나 한 것일까요?

그렇다고 그 정치인의 아들이 영웅의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니벨룽엔의 노래에 등장하는 영웅 지그프리트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무섭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자신에게 걸맞은 적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가 거대한 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용 앞에서 명검 노통으로 맞섰습니다. 그리고 그 용의 심장을 찔러 죽입니다. 목숨을 건 전투였습니다. 외적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 전세였습니다. 하지만 용은 지그프리트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줄 만큼 위대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뭐 이런 영웅의 자격을 생각하며, 음주 운전하고 경찰을 폭행한 그 젊은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외적인 행위만 두고 볼 때는 당연히 영웅적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당당한 행위를 선호합니다. 혼자 사는 모습도 당당하게, 홀로 사는 집도 당당하게, 혼자 사는 자식들 얘기도 당당하게 하는 것이 요즈음 시대의 현상입니다. 그런데 적법한 행위를 하지 않고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게 낯설 뿐입니다. 위법을 저지르고도 또 그런 행위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의를 구현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불의를 저지르는 것에는 경계를 해야 마땅합니다. 불법을 가볍게 여기는 그 태도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짓입니다.

이제 가진 자도 가진 것을 나눠 가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역사에서는 19세기란 말이 있습니다. 귀족과 시민 사이의 갈등으로 일관하는 시대였습니다. 귀족은 가진 것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 하고, 시민은 없는 생활을 이제 그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공평한 상황은 백여 년을 지속했습니다. 귀족이라는 특혜층을 제거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물림하는 가난은 한 세기를 관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의 시작은 프랑스 파리에서 대혁명이 일어나던 1789년으로 간주합니다. 그 당시 귀족은 이십만 명이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상위 1%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귀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848년에 다시 유럽 대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도 선포되었습니다. 재산을 함께 공유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때도 귀족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부풀대로 부푼 귀족들의 기고만장한 야망이 이런 유럽의 자살 전쟁을 초래했습니다. 1918, 전쟁이 끝나면서 귀족 또한 길고 길었던 존재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는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찬스는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말 잘 듣는 착한 국민이 한 몫을 했습니다. 거리두기 하라면 합니다. 가족이 굶주려도 합니다. 자신이 죽어도 합니다. 없는 자는 꿈과 희망으로 대리만족을 하며 버팁니다. 온갖 매체들을 선진국이라 외쳐대는 판국입니다. 불행은 행복으로 대체되고, 대박 낸 성공신화만 주목합니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아옹하는 식입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말 잘 듣는 것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지를.

ipecnews 기자
작성 2021.09.27 10:29 수정 2021.09.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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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3 / 김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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