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추석에 절대 내려오지 말라고 하신다.”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퍼졌던 9월초.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볼 날을 손가락으로 세던 분이었다. 어머니는 “전광훈 목사가 도대체 누구냐”는 짜증 섞인 물음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는 걱정까지 쏟아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추석이 다가오면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할게요.” 아들의 고집으로 들렸는지 어머니는 짐짓 단호했다. “아니야, 오지마! 코로나19가 심각해. 그러다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냐?”

음력 8월 15일은 한가위다. 우리 조상은 한가위로 불렸던 추석을 소중하게 여겼다. 추석 아침에 햅쌀로 밥을 짓고 햇과일로 차례를 지냈다. 여름까지 고이 기른 곡식과 과일을 수확해서 가장 먼저 조상에게 바치는 의례였다. 어릴 땐 그저 추석이 좋았다. 여러 친척이 모여서 좋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았다. 하지만 먼 곳에서 고향에 온 친척을 보면 안쓰러웠다. 어린 마음에 ‘한가한 날을 골라서 오면 될 텐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굳이 스무 시간이나 걸려서 민족 대이동의 주인공이 되는 까닭을 몰랐다.

서울과 고향을 오가는 길은 멀다. 좁은 자동차 안에서 오랫동안 운전하면 짜증이 난다. 삭신이 쑤시면 굳이 이렇게까지 명절을 지내야 하냐는 불만이 생긴다.  그러나 부모와 형제, 친척, 친구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기쁘기만 하다. 그래서 귀성길은 고되지만 즐거운 여행이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지내는 추석은 사실상 살아있는 후손을 위찬 잔치였다. 명절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부모형제라도 얼굴을 보지 못할 뻔하지 않았던가. 역설적인 즐거움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민족의 대이동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정세균 국무총리가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기보다 가족을 위하는 명절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을까. 귀성으로 가족끼리 코로나19를 옮기는 것보다 가족을 위해 귀성을 포기하란 뜻이다. 정세균 총리는 16일 전국의 부모님에게 “이번 추석엔 고향에 올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는 쿨한 부모님이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이튿날엔 자식들에게 “이번 추석은 저를 핑계 삼아 이동하지 마시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보내라”고 당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트위터
정세균 국무총리 트위터

사람 마음은 묘하다. 머리로 이해해도 마음에 걸릴 때가 있다. 총리의 당부는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다. 코로나19 전파를 걱정하는 마음과 추석 귀성길을 포기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묘수였다. 그러나 추석에 제주로 놀러 간다는 몇몇의 말과 추석 연휴 제주 관광객이 30만명에 이를 거라는 신문기사에 마음이 언짢았다. 총리가 말하는 핑계가 아니라 귀성하기 귀찮은 마음이 아닌가 싶은 깨달음이었다.

간밤에 고향에서 전화가 왔다. 모처럼 일찍 잠든 아들에게 어머니는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손녀를 보고 싶어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오라는 말조차 못해왔던 어머니. 그는 또다시 할머니와 대화를 들려줄뿐 당신의 마음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혹시 애들에게 명절에 오지 말라고 말했냐’고 물으시더니 ‘내려오지 말라는 말을 절대로 꺼내지 말라’고 하시더라.”

머리는 총리의 부탁과 당부에 동의했으나 가슴은 말 못하는 어르신의 고뇌에 괴로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올해 추석 선물은 독감과 폐렴구균 예방접종이 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귀성길에 오르면 고향에서 마스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귀성길을 포기하더라도 외출할 땐 반드시 마스크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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