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미지의 피해자 고소인께 드리는 글

이태상

 

()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인 고소인의 신상을 캐내거나 피해자를 향한 비판을 쏟아내는 등 심각한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엊그제 박 시장님 영전에 바치는 글을 쓴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다시 몇 자 적습니다.

 

나 자신이 남성이지만 다섯 딸의 아빠이고 너무도 사랑스런 다섯 살짜리 외손녀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여성을 여신처럼 숭배하고 흠모해온 사람으로 '가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설상가상의 그 얼마나 더 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나도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언행일치를 영어로는 'Walk it like you talk'를 줄여 'Walk the Talk'라 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남도 속일 수 없고, 사소한 몸짓 하나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며, 그 일부를 통해 나머지를 다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추일사가지(推一事可知)라 하지요. 이를 내가 좀 풀이해보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되고 성실히 대하는 것이 곧 만인에게 그러는 것이고, 한순간 한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영원을 그렇게 사는 것이며,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 이상으로 순수하고 진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부터 좋은 걸 싫다고 할 수 없듯이 싫은 걸 좋다고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리고 좋고 싫은 건 내가 마음 먹는다고 될 일이 결코 아니고 절로 좋든가 싫든가 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억지로라도 나를 좋아해달라고 할 일이 절대로 아닌데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 또는 금력으로 강요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고로 위인은 작은 소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큰 사람됨을 나타내는 법이고 약자를 괴롭히는 자는 너무도 찌질하고 비겁한 인간이지요.

 

짝사랑과 스토킹의 차이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짝사랑은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는 것이지만 스토킹은 상대를 괴롭히는 게 아닙니까.

 

3대 독자에다 유복자로 태어나 자식을 열다섯이나 보신 선친께서 자식들은 물론 모든 어린이를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손수 지으신 동요와 동시 그리고 아동극본들을 모아 경술국치 후 일제 강점기 초기에 우리말로 '아동낙원'이란 책을 자비로 500부 출간하셨는데, 단 한 권 집에 남아있던 것마저 6.25동란 때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글을 처음 배우면서 읽은 '아동낙원' 속의 '금붕어'란 동시 한 편의 글귀는 정확히 기억을 못해도 그 내용만은 잊히지 않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면서 어린아이가 혼잣말하는 내용입니다.

 

헤엄치고 늘 잘 놀던 금붕어 네가

웬일인지 오늘은 꼼짝 않고 가만있으니

너의 엄마 아빠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보고 싶고 그리워 슬퍼하나 보다.

저 물나라 네 고향 생각에 젖어

밖에 내리는 빗소리 들으며

난 네가 한없이 좋고

날마다 널 보면서

이렇게 너와 같이

언제나 언제까지나

한집에 같이 살고 싶지만

난 너를 잃고 싶지 않고

너와 헤어지기 싫지만

난 너와 떨어지기가

너무 너무나 슬프지만

정말 정말로 아깝지만

난 너를 놓아주어야겠다.

너의 고향 물나라

저 한강 물에

 

Goldfish

 

Always happy at play swimming

Around and around

Gaily and merrily

You were,

My dear goldfish.

 

Why then are you so still today,

Not in motion at all?

What's the matter with you?

 

Maybe you're homesick

Missing your Mom and Dad

Your sisters and brothers,

All your dear friends,

Soaked with memories and thoughts of

Your home in the water-land,

Far away. over yonder of yore.

      

I do like you so very much.

I do want to live with you

Forever and ever in this house.

I don't want to lose you.

I don't want to part company from you.

I'll be very sad to be separated from you.

I'll be missing you so very much.

And yet I'll have to set you free.

I must let you go home,

Yes, my dearest goldfish,

In the Han River.

It breaks my heart to see you

Looking so sad.

It hurts so very much

To keep you away

From your folks.

I can't be happy

If you are not happy.

I just want you to be happy.

That's all I wish.

 

그토록 어린 나이에 받은 깊은 인상과 감상 때문이었을까. 이때부터 나는 '금붕어 철학'을 갖고 80여 년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려서 벗들과 놀때도 언제고 어떤 친구가 조금이라도 싫다 하면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도 그 당장 그만두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잃어버린 기회, 놓쳐버린 아가씨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흔히 여자가 No 하면 Maybe, Maybe 하면 Yes로 새겨들으라지만 나는 고지식하게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거듭 낭패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정녕 삶이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어떤 기쁨도 참된 인간관계 밖에서는 맛볼 가망조차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말한 것처럼 흐르는 샘물처럼 비록 목마른 이의 타는 목을 적셔 주지 못하는 때에도 냇물로 흐르면서 바다로 향하다가 가뭄이라도 만나면 온데간데없이 말라 없어진 것 같지만 증발된 그대 사랑의 샘물은 결코 없어진 것 아니고, 저 푸른 하늘 떠도는 구름 되었다가 빗물로 쏟아져 내려 그대 가슴의 샘을 그 더욱 넘치게 채워주리오.

 

어떠한 경우에도 생각보다는 느낌 대로, 가슴 뛰는 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은 바꿀 수 있지만 우리 마음과 혼은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 돌아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루 이틀 후회하게 되지만 가슴이 뛰는 대로 살지 않고 엇가다 보면 평생을 후회하게 되는 까닭에서이지요.

 

부디 악몽에서 깨어나 새롭게 아름다운 꿈을 꾸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사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7.14 10:20 수정 2020.07.1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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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