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수 칼럼] 푸른 지구의 겉옷, 살아 숨쉬는 토양

 




이 세상 그 어떤 종류의 씨앗도 닿기만 하면 싹을 돋게 하는 놀라운 마술사 같은 토양은, 사람의 인분을 비롯한 소와 돼지의 질척한 오물도 마다칠 않고 정화를 시키는 고마운 해결사다. 40년 전 충북 단양에서 12km 떨어진 산골에서 10대 후반까지 자란 나는 이런 토양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국민학교 3학년이 돼서야 읍내 구경을 처음 해볼 만큼 외부와는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우리 마을에선 자다가 눈뜨고 밖으로 나오면 앞산과 뒷산에 폭이 좁은 하늘만 높게 올려다 보이는 게 다였다. 더구나 집 근처 어디를 가더라도 흙과 돌을 밟지 않고선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비라도 조금 내리게 되면 낡은 고무신 밑의 질척한 흙은 봉당까지 따라 들어와 흙벽의 방을 더 어지럽혔다. 가끔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 밭으로 나가 종일 풀을 뽑아 이리저리 흔들다 집에 들어와 보면 옷과 머리카락 속에 있던 흙이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더러운 몸을 풍덩 담그고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계곡물이 집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땅을 밟고 마당까지 오는 도중 다시 발이 더럽혀질 정도로 흙은 지저분하고 불편한 존재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굳어만 갔다. 그때부터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깨끗한 빌딩이 많은 도시를 막연히 동경하게 되었다.

 

도시는 마음만 먹으면 흙을 밟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깨끗함 때문이었다. 내가 철이 들어 도시로 나와 일하던 직장의 넓은 마당도 콘크리트가 반듯하게 포장된 곳이었다. 흙을 일부러 멀리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반듯한 건물과 깔끔한 콘크리트 마당이 있는 회사가 더 끌렸다. 도시에서의 삶은 내가 공원을 찾아가 땅을 밟기 전엔 흙과 접할 수도 없었지만, 일부러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꽤나 흐른 요즘 변화무쌍한 자연을 품고 있는 고향 땅이 자꾸만 그립다. 왜일까. 왜 이토록 맘이 변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이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서 태어나 수명을 다한 뒤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리라. 그 무엇보다 어려서 토양의 신비로움과 계절마다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겪었던 나로선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흙을 다룰 줄 안다. 시골에선 혼자가 되어도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시골로 내려가서 살 수는 없다. 삶의 터전이 있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당분간은 계속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변의 흙을 자주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로수 아래의 흙도 그렇고 편의점 앞에 마련된 작은 화단도 가리질 않는다.

 

놀라운 사실은 중앙선이 그려진 척박한 곳에 약간의 흙이 모여 있기라도 하면 온갖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도로가 서로 부대끼면서 떨어져 나온 모래와 온갖 공해 덩어리가 모여 만들어진 인공 흙이다. 토양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는 더러운 한줌의 흙인데 바람에 날리고 인간의 발길에 체여 낯선 곳에 정착한 작은 생명의 씨앗들은 감사하게도 싹을 틔운다. 이런 강인한 생명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자 몸을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것들만 불쌍하다 여겨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밟혀 죽어간 수많은 잡초와 보이지 않는 생물들도 다 같이 고귀한 생명체이니 이제라도 발밑을 잘 보며 걸어야 할 것 같다.

 

이 한 줌의 흙도 계절에 맞게 싹이 트이고 열매가 맺혀 떨어지게 하는 신비로움 힘을 갖고 있다. 그 순환의 중심에는 토양이 있다. 토양은 동물이 죽으면 흙속의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 움직이며 분해하기 시작한다. 우리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이런 고마운 토양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토양의 도움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토양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식량을 생산해 내는 것은 물론 사용하고 버린 것들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완벽한 정화를 시켜버린다. 토양은 그야말로 모든 생태계의 시작과 끝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토양을 우리 인간은 소중히 여기질 않았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사라진 토양은 곧 인간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뻔하. 더는 줄어들지 않게 인간 생명의 근원인 토양을 보호해야 한다.




이경수 26ks@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2.18 09:54 수정 2020.02.1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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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