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일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2.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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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이번 총선부터 적용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논란을 빚었지만 유권자들의 이해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투표 득표율을 의석 배분에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이다. 정당득표율 10%를 올린 정당에 전체 의석의 10%를 배분한다. 우리 총선에 적용할 경우 A정당이 정당득표율 10%를 기록하면 전체 의석 300석의 10%인 30석을 보장받게 된다. 예컨대 A정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15명에 그쳤다면, 나머지 15석을 비례의석으로 메워주는 방식이다.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30명 이상을 당선시키면, 이미 10% 정당득표율을 채웠으므로 비례의석은 한 석도 받지 못한다. 전체적으로는 의미있는 지지율을 얻고도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군소정당을 배려한 제도이다. 선거에 표출된 민심을 결과에 제대로 반영하고,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가치들을 정치에 담아내자는 취지도 담겨있다.
그러나 이 100% 연동제는 우리에게 애시당초 불가능한 과제였다. 47석에 불과한 현재 비례의석을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의석을 늘리려면 300석인 의원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를 대폭 줄여야 한다. 의석 늘리기는 여론의 반대로, 지역구 축소는 밥그릇 놓치않으려는 의원들의 반대로 논의조차 못했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현행을 유지하되 비례의석 중 30석에만 50% 연동제를 적용하는 누더기가 돼, 그것도 패스트 트랙을 타고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무뉘만 연동제가 돼버렸지만 강력한 양당 구도에 막혀 고전하는 군소정당들은 국회에 명패를 걸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호기를 맞게됐다. 비례의석 배분기준인 정당득표율 3%만 넘기면 연동제에 힘입어 3~ 4석 정도를 보장받게 된다. 국회에 보다 유력한 제3의 정치세력이 구축돼 경색되기 일쑤인 양당제의 폐단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도입된 이 제도는 `미래한국당'이라는 해괴한 정당이 출현하며 좌초 위기에 놓였다. 미래한국당은 비례의석만 노리고 한국당이 출범시킨 정당이다. 연동형 비례제는 지역구에서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고 우세한 정당득표율로 비례의석까지 ?어가던 민주당과 한국당에겐 달갑잖은 제도이다.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내는 정당은 연동제에 묶인 비례 30석에는 숟가락을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지역구 후보는 한 명도 내지않고 오직 정당투표만 받는 비례 전문 미래한국당을 급조한 이유이다.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동시 선언한 한국당 중진이 돌연 탈당해 당대표를 맡았다. 비례의원을 제명시켜 미래한국당으로 차출하는 전무후무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후보투표는 자유한국당을, 정당투표는 다른 당(미래한국당)을 찍으라는 희한한 선거운동이 펼쳐질 것이다.
한국당이 배제되기는 했지만, 준연동형 비례제가 대의기구인 국회의 절차를 통과한 만큼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봐야한다. 한국당이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정치적 실험을 망가뜨릴 경우 그 오명은 오래 갈 것이다. 2040 청년들이 주축인 `브랜드뉴파티', 3040을 중추로 한`시대전환', 벤처기업인들이 이끄는 `규제개혁 비례당(가칭)', 친환경을 주창하는 `가자환경보호당', 그제 창당발기인 대회를 한 `여성의 당'등 다양한 가치를 표방한 정당들이 30석에 희망을 걸고 분투하기 시작했다. 정의당이 밉더라도 모처럼 한국정치에 불어온 역동적 기류에 찬물을 끼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미래한국당이 정당지지율 30%를 올리면 비례 47석 가운데 18~ 20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이들은 곧바로 자체 제명절차를 거쳐 자유한국당으로 옮겨갈 것이다. 연동제에 결사 반대해 놓고 실제 선거에서는 온갖 꼼수를 동원해 그 혜택을 독식하겠다는 후안무치에 다름 아니다. 헤비급이 플라이급들끼리 경쟁하라고 만든 비좁은 링에 올라가 1등을 한들 누가 그 승리를 인정하겠는가. 제1야당이 두고두고 남을 오점이 될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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