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황천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황천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우리나라에는 정처 없이 걷는 길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길이 있고 테마가 있는 ‘올레 길’과 ‘둘레 길’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이 있다. 백의종군 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차고 넘치는 길이다. 역사적 문화유산인 이 길을 황천길을 가기 전에 체험해 봐야 임종할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길을 나섰다.^^

백의종군 길과 산티아고 순례길(스페인)을 비교하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화이면 백의종군 길은 생화이다. 유명 인사들이 개인적인 욕심과 특권을 내려놓고 백의종군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이 길을 체험해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이백면 면사무소,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백면 면사무소,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남원향교를 출발하여 30분쯤 달렸다. 이백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가 보인다. 출발 전 준비단계에서는 '이백면사무소'라고 해서 “법무사 이백면 사무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백면은 백암방(白岩坊)과 백파방(白波坊) 두 지역이 있었던 곳인데, ‘백’자가 두 개 있어서 이백면이 되었다. 마을 진입도로 3km 정도를 무궁화 꽃길로 조성한 마을이다. 

 

여원재 이정표,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여원재 이정표,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백면사무소를 지나자 운봉으로 가는 길 언덕이 보이는데 산세가 예사롭지가 않다. 만만한 언덕길을 1km 정도를 달려가니 예상이 적중했다. ‘여원재’라는 고개를 만났는데 숨이 턱 막힌다. 이 고개는 미시령과 조령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경사도인데, 평소 미시령도 논스톱으로 넘는 요령(힘으로 넘는 거 아님)을 체득한 터라 만만하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시령은 동호인들하고 함께 팀으로 넘기 때문에 뒤따라 오는 호송 차량에 배낭을 넘겨주고 단신으로 넘었기에 거뜬했지만, 지금은 두 돌이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넘는 상황이라 미시령보다 더 힘든 것 같다. ㅠㅠ

그래도 인생길처럼 자전거 길도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으니 잠시 뒤엔 흘린 땀을 식히며 편안하게 안장에 걸터앉아 고속으로 내리막을 질주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다리가 뻐근하고 힘들어도 꾹꾹 참으며 정상까지 힘겹게 낑낑대고 올라갔다. 아뿔싸! 비탈길이 없다. 심리적으로 퍼진 상태에서 정상 갓길에 잠시 쉬면서 고도계를 봤다. 해발 500m가량 나온다. 운봉(雲峯)이라는 마을 이름은 ‘구름에 덮인 봉우리’라는 뜻의 마을 이름이다. 그러니 내리막이 없을 수밖에….

 

운봉초 정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운봉초 정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운봉은 지대가 높아서 옛날부터 백제와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 요새지이고, 고려말 왜구의 노략질이 심할 때 이성계가 크게 전승을 거둔 유적지이기도 하다.
왜구, 왜군, 왜곡…. 왜 그러니 니뽕?

<잠깐만>
임진왜란 시, 전사자 3명(명군, 왜군, 조선군)이 인명을 살상한 죄로 옥황상제 앞에서 판결을 받는다.

“너희들은 명령에 따라 인명 살상을 한 점을 참작하여, 너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곤장 100대를 치겠다.”

명 군 사: 저는, 엉덩이 위에 방석을 한 장을 깔고 100대 맞겠습니다.
옥황상제: 여봐라! 저놈 엉덩이 위에 방석 한 장을 깔고, 매우 쳐라!

왜 군 사: 저는, 엉덩이 위에 방석 열 장을 깔고 100대 맞겠습니다(^^).
옥황상제: 여봐라! 저놈 엉덩이 위에 방석 열 장을 깔고, 매우 쳐라!

조선군사: 저는, 저 일본 놈을 엉덩이 위에 깔고 100대 맞겠습니다.
옥황상제: 여봐라! 저놈 엉덩이 위에 일본 놈을 깔고, 매우 쳐라!

 

유턴 마크,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유턴 마크,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장군은 도원수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들고자 합천을 향해 가다가 운봉에 도착했을 때, 권율 장군이 순천으로 이동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순천으로 방향을 바꿨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 권율 장군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지나왔던 길인 이백면사무소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나도 같이 덩달아 되돌아가야 했다. ㅠ

 

지리산 유스캠프장 입구,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지리산 유스캠프장 입구,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지리산 둘레길 입구를 지나 ‘지리산유스캠프장’에 도착했다. 캠프장은 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캠프장이고, 슬로건은 “진실되게 하는 지리산유스캠프”이다. 이곳을 통해 진실된 미래의 꿈나무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생들이 캠프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캠프장 안은 썰렁했다.

 

밤재 정상 통행 금지 현수막,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밤재 정상 통행 금지 현수막,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기록적인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지리산 유스캠프장에서 밤재 정상으로 가는 길이 유실되어 올라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회 길을 찾아 재차 시도했으나 우회 길도 역시 통행 금지!
“...”

운봉에서의 허망한 유턴, 지리산의 산사태로 밤재 정상으로 가는 길의 통행 금지. ㅠㅠ

 

한성압송, 현충사 사당에 있는 십경도에서
한성압송, 현충사 사당에 있는 십경도에서

억울한 누명의 옥살이에서, 죽다 살아난 이순신 장군은 권율 장군을 만나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도 불평이나 불만을 품지 않고 백의종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평정심과 잘 정돈된 내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열하자면 수없이 많겠지만 언뜻 생각나는 것들은, 10년에 걸친 처가살이, 무인이었던 장인어른 방진의 10년에 걸친 엄격한 무과 개인지도, 첫 무과 시험의 낙방, 4년 동안의 무과 재수생 생활, 무과 합격 후 9개월 정도의 무보직 대기 상태, 한성 훈련원 봉사(인사기록 담당) 시절에 상관인 ‘서익’의 부당한 인사청탁 거절로 인한 시련과 불이익, 발포 만호 시절에 상관인 ‘성박’과의 오동나무 사건, 2번의 백의종군과 3번의 파직, 조정의 횡포 등 수 많은 어려움이나 불행을 ‘고행’이 아닌 ‘수행’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고행과 수행의 차이는,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과 이겨내는 것의 차이이고, 후자는 '개념설계역량'의 근간이 된다.

백의종군 길을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탐방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구례를 향해 페달을 밟으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어제까지의 시련을 연단으로, 실패를 시행착오로 받아들인다면 오늘부터는 베테랑이다.

“시행착오로 받아들이면, 실패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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