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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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도 많이 올랐고, 원자재와 인건비도 대폭 상승해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합니다. 그나마 우리 구역은 공사비가 저렴한 편입니다.” 한 대형 건설사 직원의 얘기다.

“우리 조합원들도 어느 정도 공사비 인상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사비 인상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제출해 주세요. 무작정 올려달라고 말만 하지 말고, 공식적인 자료를 요청합니다.” 최근 분양신청을 앞두고 있는 조합 관계자의 얘기다.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간의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조합과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건설사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 공사비 전쟁은 시공자 선정 이후 관리처분 수립이나 관리처분 변경 때마다 최소 몇 번씩 전국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겪어야 한다.

대부분 협상 과정을 통해 결론이 도출되기는 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올려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기분이 든다. 건설사에 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됐다.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공사비를 올리던 건설사들의 그릇된 관행이 한국부동산원의 검증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1/5 이상이 요청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으로 공사비가 증액되면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 여기서 일정기준은 사업시행인가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경우 10% 이상,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자를 선정한 경우 5% 이상 공사비 증액이 있을 때이다. 다만 생산자물가상승률은 제외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올 7월까지 건설사들이 조합에 요구한 공사비 증액은 54곳에서 총 4조6,814억7,400만원이었다. 대부분 설계나 마감재 변경, 물가상승 등이 주요인이었다.

하지만 한국부동산원의 검증 결과 증액 공사비 적정액은 3조4,887억2,900만원이었다. 건설사가 요구한 금액의 75% 수준으로 약 1조2,000억원 규모가 뻥튀기된 금액인 것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20년 서울 A아파트의 경우 건설사가 증액공사비로 8,671억2,100만원을 요청했지만 검증 결과 5,530억6,200만원으로 줄었다. 무려 3,000억원 넘게 부풀린 게 들통 났다. 또 지난해 경기 B구역의 경우 2,832억600만원을 요구했지만 검증 결과 적정 공사비는 1,819억6,500만원이었다. 1,000억원 넘는 금액이 깎인 것이다.

이밖에도 △경기 C지구 286억원 △경기 D구역 172억원 △서울 E구역 397억원 △서울 F단지 1,550억원 △광주 G단지 267억원 △충남 H구역 197억원 △서울 I구역 403억원 △서울 J단지 706억원 △전북 K단지 207억원 등 규모가 큰 구역의 경우 최소 수백억원씩 고무줄처럼 늘어난 게 밝혀졌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정책기획실장은 “조합을 대신해 한국부동산원이 건설사의 요구액이 적정한지 판별해주는 게 공사비 검증제도”라며 “건설사들이 조합의 구체적인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이어서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공사비 검증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뢰 건수는 2019년 3건에서 2020년 13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22건까지 증가했다. 올해도 7월까지 총 16건에 대한 검증이 진행되는 등 증가세에 있다.

박노창 기자 par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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