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TP(콜레스테릴에스터 전달단백질)는 HDL에 있는 콜레스테릴에스터를 LDL로 전달해 혈중 LDL 콜레스테롤 증가에 관여한다. 오비세트라핍은 이 CETP를 억제해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자료=뉴암스테르담파마][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한때 신약 개발의 무덤으로 여겨졌던 콜레스테릴에스터 전달단백질(CETP) 억제제가 마침내 의약품 허가의 벽을 넘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21일 네덜란드 바이오기업 뉴암스테르담파마(NewAmsterdam Pharma)가 개발한 CETP 억제제 오비세트라핍(obicetrapib)의 단독요법과 에제티미브 병용요법을 각각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오비세트라핍이 세계 규제기관에서 허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인된 제품은 오비세트라핍 10mg 단일제 '우베슬로(Ubeslo)'와 오비세트라핍 10mg·에제티미브 10mg 고정용량복합제 '에블라코(Evlarco)'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제약기업 메나리니그룹(Menarini Group)이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다.
우베슬로는 성인 원발성 고콜레스테롤혈증과 혼합형 이상지질혈증 환자의 식이요법 보조제로 허가됐다. 최대 내약용량의 스타틴을 사용해도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테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환자에게 기존 지질저하제와 병용하거나, 스타틴을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 단독 또는 다른 지질저하제와 함께 투여할 수 있다.
에블라코 역시 같은 질환을 대상으로 허가됐으며, 에제티미브까지 사용하고도 LDL 콜레스테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환자 등이 대상이다.
수차례 좌절된 CETP 억제제
이번 승인이 주목받는 것은 CETP 억제제의 오랜 실패 역사 때문이다.
CETP는 고밀도지단백(HDL)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릴에스터를 LDL과 같은 다른 지단백으로 옮기는 단백질이다. 이를 억제하면 이른바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HDL 콜레스테롤은 증가하고 LDL 콜레스테롤은 감소한다.
이 때문에 CETP는 1990년대부터 심혈관질환 치료를 위한 유망한 표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제 신약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화이자가 개발한 토르세트라핍(torcetrapib)은 대표적인 사례다. 1만 5067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HDL 콜레스테롤을 72.1% 높이고 LDL 콜레스테롤을 24.9% 낮췄지만, 오히려 심혈관 사건과 사망 위험이 증가했다.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은 대조군보다 58% 높아졌고 개발은 중단됐다.
로슈의 달세트라핍(dalcetrapib)도 실패했다.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 1만 5871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HDL 콜레스테롤은 크게 증가했지만 심혈관 사건을 줄이지 못해 무용성 판단에 따라 시험이 조기 종료됐다.
일라이 릴리의 에바세트라핍(evacetrapib)은 LDL 콜레스테롤을 약 31%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을 133% 이상 높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약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한 ACCELERATE 임상에서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은 치료군 12.9%, 위약군 12.8%로 차이가 없었고 시험은 조기에 중단됐다.
CETP 억제제를 이용해 혈중 지질 수치를 크게 개선해도 실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확인된 것이다.
다만 CETP 억제제 자체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MSD의 아나세트라핍(anacetrapib)은 3만 449명을 대상으로 한 REVEAL 임상에서 주요 관상동맥 사건 발생률을 위약 대비 유의하게 낮췄다. 그럼에도 MSD는 개발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CETP 억제제는 오랫동안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LDL 콜레스테롤 낮추는 데 초점
오비세트라핍은 과거 CETP 억제제와 달리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것보다 강력한 LDL 콜레스테롤 저하 효과에 개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유럽 승인은 BROADWAY, BROOKLYN, TANDEM 등 3상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이뤄졌다.
대표적인 BROADWAY 임상에는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이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을 가진 고위험 환자 2530명이 참여했다. 환자들은 기존에 최대 내약용량의 지질저하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환자들을 오비세트라핍 10mg 또는 위약군에 2대 1로 무작위 배정해 1년 동안 치료한 결과, 84일째 오비세트라핍군의 LDL 콜레스테롤은 치료 전보다 평균 29.9% 감소했다. 반면 위약군은 2.7% 증가했다. 두 군 사이의 차이는 32.6%포인트였다.
전체 3상 프로그램에서는 오비세트라핍 단독요법이 위약 대비 LDL 콜레스테롤을 최대 약 40% 낮췄고, 에제티미브와 병용할 경우 감소 폭은 약 50%에 달했다.
이상반응 발생률은 BROADWAY 임상에서 오비세트라핍군과 위약군이 대체로 비슷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이 밝힌 우베슬로의 주요 이상반응은 고혈압, 어지럼증, 두통, 설사, 복통 등이다.
진짜 시험대는 심혈관 사건 감소
그러나 오비세트라핍이 CETP 억제제의 오랜 실패 역사를 완전히 끝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LDL 콜레스테롤 감소가 실제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사건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암스테르담파마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9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3상 PREVAIL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또는 이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오비세트라핍이 주요 심혈관 사건(MACE)을 줄일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유럽 당국 역시 이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EC 승인에는 시판 후 유효성 연구가 포함됐으며, 회사는 PREVAIL의 최종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과거 CETP 억제제들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크게 개선하고도 심혈관 사건 감소에는 잇따라 실패했다는 점에서 PREVAIL 결과는 오비세트라핍의 임상적 가치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비세트라핍은 이번 유럽 승인으로 수십 년간 이어진 CETP 억제제 개발에서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이제 관심은 이 약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환자의 심혈관 사건까지 줄일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