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항암약물을 실어 보내는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가 또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하나의 항체에 한 종류의 약물을 연결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작용기전을 가진 두 종류의 항암약물을 동시에 싣는 방식이다.
같은 암이라도 종양 안에는 성질이 서로 다른 암세포가 섞여 있고 치료 과정에서 특정 약물에 내성을 갖는 세포가 살아남을 수 있다. 한 종류의 세포독성 약물만 전달하는 기존 ADC가 부딪힐 수 있는 이런 한계를 두 가지 공격수단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듀얼 페이로드(dual-payload) ADC'가 실제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개발 단계에 돌입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와 대만에 기반을 둔 바이오기업 에이스포디아(Acepodia)의 간세포암 치료 후보물질 'ACE723'에 대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하면서다.
이에 따라 회사는 절제할 수 없거나 전이된 간세포암 환자를 대상으로 1상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ACE723은 간세포암에서 많이 발현되는 GPC3를 표적으로 삼아 서로 다른 작용기전을 가진 두 종류의 세포독성 약물을 한꺼번에 전달하도록 설계된 듀얼 페이로드 ADC다. 에이스포디아는 이를 통해 종양 이질성과 단일 약물에 대한 내성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ADC 한 개에 서로 다른 공격수단 두 개
ACE723은 글리피칸-3(glypican-3, GPC3)를 찾아가는 항체에 작용기전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세포독성 약물을 연결한 ADC다.
일반적인 ADC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을 인식하는 항체와 세포를 죽이는 세포독성 약물(payload), 이 둘을 이어주는 링커(linker)로 구성된다. 항체가 암세포를 찾아가 결합하면 ADC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이후 방출된 약물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ACE723의 차이는 항체 하나에 한 종류가 아닌 두 종류의 세포독성 약물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에이스포디아는 이를 위해 '항체-이중약물 접합(Antibody-Dual-Drugs Conjugation, AD2C)'이라는 자체 플랫폼을 개발했다. 회사에 따르면 AD2C는 항체 자체를 별도로 개조하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링커-페이로드를 선택적으로 연결할 수 있고, 목적에 따라 항체당 약물 비율(drug-to-antibody ratio, DAR)도 조절할 수 있다.
회사가 굳이 항체 하나에 두 가지 약물을 싣는 이유는 '종양 이질성(tumor heterogeneity)' 때문이다.
하나의 암 덩어리 안에서도 암세포의 유전자와 단백질 발현, 약물 민감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한 종류의 세포독성 약물에 취약한 세포가 사라진 뒤 상대적으로 내성이 강한 세포가 살아남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면 한 종류의 약물에 저항성을 보이는 암세포까지 제거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듀얼 페이로드 ADC의 기본 발상이다.
듀얼 페이로드, 전임상서 가능성 확인
이런 접근은 단순한 이론만은 아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진 등이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MMAE와 MMAF를 하나의 HER2 표적 항체에 연결한 듀얼 페이로드 ADC가 만들어졌다.
HER2 발현이 균일하지 않고 기존 치료에 내성을 보이는 유방암 동물모델에서 이 ADC는 한 종류의 약물을 탑재한 ADC뿐 아니라 서로 다른 단일 페이로드 ADC 두 개를 함께 투여한 경우보다도 강한 항암 효과를 나타냈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약물의 특성을 하나의 항체에 결합하는 방식이 종양 이질성과 약물내성을 극복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ADC 개발에서 내성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도 이런 연구를 촉진하고 있다.
올해 Drug Resistance Updates에 발표된 리뷰논문은 ADC 내성이 표적 항원의 변화뿐 아니라 ADC의 세포 내 이동, 세포독성 약물 자체에 대한 저항성, 종양 미세환경 등 여러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ADC 구조를 바꾸거나 새로운 페이로드를 적용하는 차세대 ADC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요 개발 방향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ACE723은 왜 간암의 GPC3를 노렸나
ACE723이 겨냥하는 GPC3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GPC3는 정상 성인 조직에서는 발현이 제한적이지만 간세포암을 비롯한 일부 암에서 비정상적으로 다시 많이 만들어지는 세포표면 단백질이다. 이 때문에 정상 조직 손상은 줄이면서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표적으로 오래전부터 연구돼 왔다.
2025년 Bioorganic Chemistry에 발표된 GPC3 표적 치료제 리뷰에 따르면 현재 GPC3를 겨냥해 단클론항체, 이중특이항체, ADC, 면역독소, CAR 면역세포 등 다양한 치료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간세포암에서 GPC3의 선택적인 발현 특성이 신약 표적으로서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ACE723은 GPC3를 발현하는 암세포에 결합한 뒤 서로 다른 두 세포독성 약물을 한꺼번에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에이스포디아는 지난해 미국암연구학회(American Association for Cancer Research, AACR) 연례회의에서 ACE723으로 이어진 GPC3 표적 듀얼 페이로드 ADC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항체를 별도로 엔지니어링하거나 효소 접합 과정을 거치지 않고 두 종류의 페이로드를 하나의 항체에 연결했으며, 서로 다른 작용기전의 약물을 이용해 이질적인 암세포와 단일 페이로드에 대한 내성을 동시에 겨냥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중국 동시 임상개발 추진
에이스포디아는 ACE723을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개발할 계획이다.
회사는 지난달 11일 FDA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 ACE723의 IND를 동시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번에 임상 진입이 허용됐으며 중국 신청은 별도 심사를 받고 있다.
간세포암은 종양 자체의 이질성이 크고 진행성 단계에서는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 이후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 제한된 환자가 적지 않다. 에이스포디아는 1상에서 ACE723의 안전성과 내약성을 우선 평가하고 적절한 후속 임상 투여용량을 찾을 예정이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듀얼 페이로드 방식이 기존 ADC보다 실제 환자에게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일지는 알 수 없다. ACE723은 이제 막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 들어가는 후보물질로 임상적 안전성과 항암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두 종류의 강력한 세포독성 약물을 한 항체에 동시에 연결하는 만큼 효과뿐 아니라 약물의 안정성, 체내 분포, 독성 관리와 적절한 DAR 설정 등이 임상개발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ACE723의 1상은 그래서 단순한 간암 신약 하나의 첫 임상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험실과 동물모델에서 가능성을 보여온 '두 가지 페이로드를 하나의 항체로 동시에 전달하는 전략'이 실제 환자에서도 종양 이질성과 약물내성이라는 ADC의 오래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