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휴온스의 미국 주사제 수출 전선에 치명적인 악재가 터졌다. 대규모 자발적 리콜 사태에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공식 경고장인 '워닝레터(Warning Letter)'를 전격 수령한 것이다. 이달 초 리콜 조치가 해제되면서 미국 수출 정상화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낙관론이 나왔으나, 워닝레터 수령으로 생산라인 가동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이를 FDA에 입증하기 전까지는 북미 수출 제품의 통관과 생산 재개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25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미국 FDA는 최근 휴온스 충북 제천 공장에 대해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CGMP) 위반을 이유로 워닝레터를 발송했다. 이번 워닝레터는 지난해 11월 진행된 제천 공장 현장 실사에 따른 후속 규제 조치다.
당시 FDA는 현장 실사 직후 일부 데이터 시스템 운영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 사항을 담은 '폼 483(Form 483)'을 휴온스에 발부한 바 있다. 휴온스는 이에 대한 해명 자료를 제출하고 수출 품목의 자진 리콜 조치에 나섰으나, FDA는 회사 측의 대처가 엄격한 글로벌 규제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결국 최종 제재 수단 중 하나인 워닝레터를 꺼내 들었다.
이달 초 수령한 리콜 해제 서한으로 높아졌던 수출 재개 기대감은 워닝레터 발부 소식과 함께 전사적 품질 시스템을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무거운 과제로 바뀌었다.
데이터 조작·증거 인멸 … '데이터 무결성' 붕괴
공개된 워닝레터의 핵심 지적 사항은 제약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의 심각한 훼손이다.
워닝레터에 따르면, FDA는 제천 공장의 미생물 및 이화학 실험실에서 실험실 기록의 은폐와 의도적인 조작 정황을 다수 포착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배합 탱크 및 제품 이송 라인에 대한 내독소(Endotoxin) 및 미생물부하(Bioburden) 시험 과정에서 내독소 허용 한도 초과 및 유의미한 미생물 증식이 확인됐으나, 부서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미생물이 증식한 배양 접시를 즉각 폐기할 것을 지시해 물리적 증거를 인멸했다.
나아가 카메라의 타임스탬프 기능을 조작해 과거 날짜로 실험 서류를 소급 작성(Backdating)하는 등의 기만행위도 적발됐다.
문서 통제 시스템의 부재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장 조사 중 미생물 실험실에서는 무려 1897장에 달하는 통제되지 않은 공백의 CGMP 양식 더미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또한 시험일지(logbook)에서 이미 작성이 완료된 페이지를 칼로 정교하게 도려낸 뒤 조작된 가짜 페이지로 교체한 사실까지 확인되며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FDA 보고 사항이 '내부 감사'로 둔갑 … "납득할 수 없는 처사"
사태가 발각된 이후 휴온스가 보여준 대처 방식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휴온스는 데이터 조작 사실이 발각되자 이에 가담한 직원들을 해고하고, 데이터 무결성 전담팀을 신설했으며, 외부 전문 컨설턴트를 고용해 데이터 무결성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평가를 수행했다.
특히 당시 휴온스는 외부 컨설턴트를 통한 데이터 무결성 평가의 중간 및 최종 보고서를 FDA에 제출하기로 약속했는데, 이후 이러한 작업을 '내부 감사'로 분류하고 FDA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휴온스의 이 같은 대응 방식에 대해 FDA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평가는 FDA 조사관이 휴온스에 전달한 FDA 조사 결과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것으로, 서면으로 작성된 품질 보증 프로그램에 따른 정기 평가의 일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합격을 위한 규정 이탈 실험 … FDA 신뢰 잃은 '사후 대처'
규격 외 결과(OOS)가 발생했을 때 이를 엄격히 조사하고 처리해야 하는 규정(21 CFR 211.192) 이행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됐다.
휴온스는 특정 배치 테스트(Batch Test)에서 원인 미상의 불순물로 인해 합격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자, 제품 자체가 아닌 '오염된 실험실 유리 기구'의 문제일 수 있다는 가설을 임의로 세우고 이에 대한 검증을 진행했다.
이미 폐기 대상으로 분류된 유리 기구를 사용해 원래 불합격 샘플을 모방한 두 번째 샘플을 준비했으며, 이 두 번째 샘플이 합격 기준을 충족하자 원래 테스트 결과를 무효로 돌렸다.
이 밖에도 FDA는 ▲무균 상태라고 주장하는 의약품의 미생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적절한 서면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점 ▲무균 조건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는 장비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점 등을 이번 워닝레터 발부의 이유로 제시했다.
멈춰 선 북미 수출길 … '클로즈 아웃'까지 험난한 가시밭길
휴온스의 미국 수출길은 현재 물리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이번 워닝레터 발부에 앞서 FDA는 이미 지난 4월 휴온스 제천 공장의 모든 미국 수출용 의약품에 대해 '수입 경보(Import Alert 66-40)' 조치를 한 바 있다.
수입 경보 명단에 기업의 이름이 오르면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의약품은 미국 항구에 도착하는 즉시 물리적 검사 없이 통관이 보류된다. 막대한 폐기 비용을 물거나 반송해야 하는 실질적인 수출 금지 조치다.
이제 휴온스 앞에는 규제 해소의 험난한 과정이 놓여 있다. 미국 제약 규제 시스템상 데이터 무결성 위반에 따른 수입 경보와 워닝레터를 해제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워닝레터를 수령한 기업은 15영업일 이내에 식별된 각 위반 사항에 대한 근본 원인 분석과 상세한 시정 및 예방 조치 계획을 서면으로 작성해 FDA에 회신해야 한다. 완제의약품 제조 시설이 워닝레터 발부 후 종결 문서인 '클로즈 아웃 레터(Close-Out Letter)'를 수령하기까지는 평균 555일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입 경보(IA 66-40)를 해제하기 위해서도 방대한 서면 증빙 제출은 물론, 미국 본토 조사관의 제천 공장 현장 재실사를 거쳐 무결점을 최종 입증해야만 한다.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무형자산인 신뢰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입 경보 등재 사실은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만큼, 연대 책임 리스크를 우려한 기존 파트너사들이 공급사를 변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휴온스가 미국 수출 전선 정상화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단기적 미봉책이 아닌, 품질 중심의 전사적인 조직 문화 쇄신과 전자 시스템 기반의 강력한 데이터 무결성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수출 중단 사태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된 휴온스가 이번 위기를 전사적 체질 개선의 반면교사로 삼아 굳게 닫힌 북미 시장의 빗장을 다시 열어젖힐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