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비만 치료제가 3중 작용제를 넘어 4개의 핵심 타깃을 동시에 공략하는 4중 작용제로 진화하고 있다. 비만 약물의 진화는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빅파마들의 개발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 혁신 주기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GLP-1(Glucagon-Like Peptide-1,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거 향정신성 의약품 중심의 치료 시장을 대체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현 비만 치료제 시장, GLP-1 융합형 다중 작용제가 주도
GLP-1 작용제의 핵심 기전은 위 배출 지연에 있다. 음식물이 위에서 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를 늦춰 포도당이 혈관으로 유입되는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한다. GLP-1 작용제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활용되었던 배경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GLP-1 작용제의 위 배출 지연 기능은 포만감을 유도, 체중 감량이라는 부수적 효까지 얻게 됐다. 오늘날 전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비만치료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은 기전이 역사에 남을 대표적인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가 된 셈이다.
초기 선두주자는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오젬픽(Ozempic, 성분명: 세마글루티드·semaglutide)'이었다. 그러나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GLP-1 작용제에 GIP 기능을 더한 2중 작용제 '마운자로(Mounjaro, 성분명: 터제파타이드·tirzepatide)'를 선보이면서 시장 판도가 바뀌었다.
이는 지방 조직의 대사 과정을 조절하는 GIP(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자극 펩타이드) 기전 덕분이다. 이를 토대로 '마운자로'는 지방 축적까지 억제하며 '오젬픽' 대비 더 높은 체중 감량률을 기록하고 있다. 두 약물의 평균 체중 감량률은 각각 15%, 20% 수준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글루카곤(Glucagon) 작용까지 결합한 3중 작용제가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글루카곤은 식욕에 작용하는 다른 호르몬과 달리 에너지 대사 효율을 높여 지방 연소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릴리가 개발 중인 3중 작용제 후보물질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는 실제로 임상 3상시험에서 30%에 가까운 체중 감량률을 보인 바 있으며, 현재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있다.
고질적 난제 '근손실' 극복 위해 등장한 4중 작용제 'NA-931'
그러나 어떤 약물이든 한계는 있는 법이다. GLP-1이든 GIP이든 글루카곤이든 현존하는 비만 치료제의 고질적인 난제는 근손실이다. 체중이 감소하면 신체를 지탱하는 근력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기초 대사량의 핵심인 근육이 에너지원으로 소모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근육은 가만히 있어도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비만 치료제로 인해 식사량 자체도 줄어드니 근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약물이 바로 4중 작용제다. 미국 바이오 벤처 기업 바이오메드(Biomed)가 개발 중인 4중 작용 비만치료제 'NA-931'가 그 주인공이다. 'NA-931'는 '레타트루타이드'의 기전에 근육 생성 및 유지에 관여하는 IGF-1 수용체 타깃을 추가했다. IGF-1(Insulin-like Growth Factor-1,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1)은 근육 세포 합성을 자극하고 분해를 방지하는 호르몬이다.
바이오메드에 따르면, 'NA-931'는 2024년 7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진행한 임상 2상시험에서 15%의 체중 감량률을 확인했다. 이는 얼핏 기존 '오젬픽'의 체중 감량률과 유사한 수준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해당 임상은 감량률 자체보다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 평가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NA-931' 투약군에서 근손실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NA-931'는 기존 비만 치료제의 약점을 극복할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과제는 남아 있다. IGF-1 수용체는 오작동할 경우 과도한 세포 성장으로 인해 말단 비대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간 업계에서 IGF-1 수용체 활용에 주저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 약물의 성공 여부는 대규모 3상 임상을 통해 근손실 없는 체중 감량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입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