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31일 미국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ASCO 2025 정규 구두발표 세션 현장. 2025 제61차 ASCO 연례 학술대회에는 100개국 이상에서 온 의료진, 연구자, 의료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사진=미국임상종양학회)[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가톨릭대 기술지주 1호 자회사로 출발한 국내 면역세포치료제 전문기업 '바이젠셀(ViGenCell)'이 시카고 ASCO 무대에 선다. 바이젠셀은 이달 말, 개발 중인 면역세포치료제 'VT-EBV-N'의 임상 2상 결과를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6' 정식 구두발표 세션에서 공개한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세포치료제 임상 데이터가 ASCO 구두발표 세션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VT-EBV-N'은 EBV(Epstein-Barr Virus,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양성 NK/T세포림프종을 겨냥한 자가 면역세포치료제다. 환자의 면역세포를 채취해 EBV 항원을 표적으로 삼도록 설계한 세포치료제로, 재발 위험이 높은 희귀 혈액암 영역에서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다. 지난 2021년 코스닥 상장 이후 임상 2상을 진행했고,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첨단재생의료 치료계획 1호 적합 승인을 받았다.
<바이젠셀, '신속 구두발표' 아닌 '일반 구두발표' 세션 첫 배당>
ASCO 2026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각기 다른 위상의 발표 기회를 얻었다. 바이젠셀은 일반적인 '구두발표(Oral Presentation)' 세션을 배정받았다. 지아이이노-베이션과 루닛은 '신속 구두발표(Rapid Oral)'로, 더블바이오와 에스티큐브는 '포스터 발표(Poster)'로 참가한다.
구두발표는 ASCO가 공식 세션으로 편성하는 정규 무대다. 발표자가 10~15분간 직접 발표하고 청중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신속 구두발표는 5~7분의 짧은 시간에 여러 연제(演題)를 연속으로 발표하는 형식이다. 포스터 발표는 포스터 게시판에 붙여놓고 청중의 질문에 응하는 방식이다.
바이젠셀의 구두발표 진입은 ASCO가 임상 데이터의 중요도를 그만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바이젠셀만 이 단계에 도달했다.
지난해 5월 31일 미국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ASCO 2025 정규 구두발표 세션에서 청중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미국임상종양학회) 전체생존기간 p값, 0.05 이하 기준 충족 못해
그런데 최근 'VT-EBV-N'의 임상 2상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EBV(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양성 NK/T세포림프종 환자의 재발 억제 효과를 가늠하는 '무질병생존율(Disease-Free Survival, DFS)'에 대한 1차 평가지표는 충족했지만, 2차 평가지표인 전체생존기간(Overall Survival, OS)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실제로 회사측의 공시 내용을 보면 이번 임상에서 나타난 OS p값은 0.058로, 일반적인 통계적 유의성 기준선인 '0.05 이하'를 0.008 차이로 벗어났다. 통계학적 잣대로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낙방한 셈이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결과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바이젠셀 측은 12일 헬스코리아뉴스에 "사건 수 부족에 따른 통계적 역설"이라며 "OS p값 0.058을 단순한 실패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임상 결과는 약효 부족이 아닌 통계적 한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무결성' 확인 … 계획서 순응군에서도 일관된 결과 도출
회사측은 그 근거로 데이터의 '일관성'을 제시했다. 주목할 부분은 전체 분석 대상군(FAS)과 계획서 순응군(PPS) 모두에서 일관된 경향성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PPS'는 임상시험 계획서를 엄격하게 준수한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으로, 약물의 순수한 효능을 확인하는 지표다.
두 분석 군에서 모두 투약군 사망 0건이라는 결과와 함께 일관된 통계 수치가 도출되었다는 것은, 이번 임상이 설계된 프로토콜에 따라 매우 정밀하게 수행되었으며 결과의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회사 측은 이러한 투약군 전원 생존이라는 결과가 임상 현장에서 확인된 약물의 실질적인 가치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학술적 심판대 오르는 0.008의 간극 … ASCO가 판가름
결국 '0.058'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세계 최고의 종양학 전문가들이 모이는 ASCO 무대에서 어느정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 유의성 문턱을 넘지 못한 '0.008'의 간극이 단순한 수치적 한계인지, 아니면 약효의 불확실성을 시사하는 지표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젠셀의 이번 발표는 '투약군 사망 0건'이라는 임상적 실제 효능이 통계적 엄밀함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바이젠셀 관계자는 "이번 ASCO 발표는 글로벌 혈액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VT-EBV-N의 임상 데이터를 보다 심도 있게 공유하고 논의하는 자리"라며 "재발 억제 및 생존 관련 지표를 포함한 주요 임상 결과들이 객관적인 학술 검증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회사는 첨단재생의료 치료계획과 별도로 조건부 품목허가 절차도 준비하고 있다. 바이젠셀 관계자는 "향후 조건부 품목허가를 위한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며 "신속처리 대상 첨단바이오의약품 지정 신청을 비롯해 필요 절차들을 밟아 나간 후 조건부 품목허가까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ASCO 2026'에는 바이젠셀 이외에도 여러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지아이이노-베이션(GI Innovation)은 면역항암제 'GI-101'의 임상 1상 신속 구두발표를 준비 중이다. 루닛은 AI 활용 암 진단 보조 기술 관련 신속 구두발표를 진행한다. 더블바이오는 면역항암제 'BOS-PSRT치료제'의 임상 2상 포스터 발표를 예정하고 있다. 에스티큐브는 면역항암제 'DNA바이러스' 암 치료 전략 관련 1b/2상 포스터 발표를 앞두고 있다.
◇바이젠셀은 어떤 회사인가?
바이젠셀 GMP센터바이젠셀은 면역학 분야 연구자인 김태규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 2013년 설립한 면역세포치료제 전문기업이다.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의 면역세포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2016년 보령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보령 관계사로 편입됐고, 2021년 8월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에 성공했다. 이후 지난해 최대주주가 보령에서 가은글로벌로 변경되며 지배구조 변화도 겪었다. 현재 리더는 기평석 대표이사다.
회사의 기술 플랫폼은 세 갈래다. 첫 번째는 항원 특이 살해 T세포 기반 자가 면역세포치료제 플랫폼인 'ViTier'다. 'VT-EBV-N'은 이 플랫폼에서 나왔다. 두 번째는 감마델타 T세포 기반 동종 면역세포치료제 플랫폼 'ViRanger', 세 번째는 제대혈 유래 면역억제 세포치료제 플랫폼 'ViMedier'다.
핵심 파이프라인은 ''VT-EBV-N이다. 이 밖에도 급성골수성백혈병 대상 후보물질, 이식편대숙주병(GvHD), 아토피성 피부염 등을 겨냥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의 현재 가치는 사실상 'VT-EBV-N'의 개발 성과와 상업화 가능성에 크게 묶여 있다.
임상 단계 바이오텍의 구조도 그대로 안고 있다. 안정적인 제품 매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연구개발비 부담과 영업손실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VT-EBV-N'의 ASCO 발표, 첨단재생의료 치료계획 진행, 조건부 품목허가 가능성은 단순한 파이프라인 이벤트가 아니라 회사의 생존 전략과 직결된다.
바이젠셀은 앞서 'VT-EBV-N'의 국내 출시 목표와 매출 전망도 제시한 바 있다. 회사가 제시한 청사진은 국내 허가와 출시, 이후 희귀 혈액암 영역에서의 시장 안착이다. 보령과의 국내 사업화 협력도 유지되고 있다.